"단지 사과 원할뿐인데…" 위안부할머니 수요 집회 700번째

  • 입력 2006년 3월 15일 21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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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고 썩어 사라져도 역사는 살아있다."

15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 15년간 이곳 좁은 인도를 '전쟁터'로 삼고 살아온 80대 할머니 11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늙고 쇠약한 몸을 이끌고 집회에 나선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회한이 묻어났다. 국내 48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20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16살 꽃 다운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갔던 이용수(79)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일본 대사관을 향해 외쳤다.

"우리가 또 왔다. 이번이 700번째다. 네 놈들에게 당한 치욕을 갚기 전까지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죽을힘을 다해서 또 올 테다."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 해온 정기 수요 집회가 15일로 700회를 맞았다.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치지 않았던 집회였다. 매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0~20명이 교대로 참가해 왔다.

500번째 시위(2002년 3월)부터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시위'로 등재됐다.

정대협은 이날 참가자들에게 무지개 색종이를 나눠줬다.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책임자 처벌, 법적 배상 등 7가지 요구 항목이 적혀 있었다. 우리 소리꾼 '바닥소리'와 서울여대 노래패가 할머니들을 격려했다.

이날 시위는 부산의 일본 영사관 등 전국 주요 도시와 베를린 뉴욕 런던 등 해외 13개 도시, 도쿄(東京) 등 일본 7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그러나 일본 대사관은 지난 15년과 다름없이 이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25명의 위안부 할머니 중 105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일본 정부는 한번도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 대명중학교에 다니는 이욱준(14) 군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배상도 못받을뿐더러 일본이 세계를 속일 수 있게 한다. (할머니들은) 아프지도 늙지도 말아달라"고 외치자 할머니들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이옥선(81) 할머니는 "그동안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집회를 하면서 우리가 원한 것은 일본의 사과 하나 뿐"이라며 "죽기 전에 사과도 받지 못한다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주(88) 할머니도 "함께 해온 동료가 한 두 명 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죽어도 일본의 잘못은 사라지지 않을 것"고 힘줘 말했다.

정대협 관계자는 "15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일본 정부는 그보다 뻔뻔한 것 같다"며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이 있을 때까지 앞으로도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수요집회는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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