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경 기동대 체험르포]“시민들 냉대가 돌멩이보다 아파”

  • 입력 2006년 1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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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의 하루는 고달프다. 몸과 마음 모두 힘들다. 이들은 “병역 의무를 다하려고 근무하는데도 시민들의 냉대 속에서 화염병과 돌멩이를 맞을 때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지방경찰청 동부기동대 소속 전경들이 시위 현장에 출동하기 전 군가를 부르고 있다. 이종승  기자
전경의 하루는 고달프다. 몸과 마음 모두 힘들다. 이들은 “병역 의무를 다하려고 근무하는데도 시민들의 냉대 속에서 화염병과 돌멩이를 맞을 때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지방경찰청 동부기동대 소속 전경들이 시위 현장에 출동하기 전 군가를 부르고 있다. 이종승 기자
10일 오전 5시 59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지방경찰청 동부기동대 4층 13중대 1소대 내무반. 누군가 “기상”이라고 외치자 한 명이 재빨리 달려가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의무경찰(의경)들은 용수철 튀듯 벌떡 일어나 출동 준비를 했다.

이날 13중대의 임무는 오전 8시부터 12시간 동안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중앙청사 일대를 경비하는 것. 이날 오후 3시부터 정부중앙청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홍콩 억류자 석방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의경들이 전열 온수기로 데운 물 한 바가지로 세수를 하고 10분 만에 식사를 마친 뒤 버스에 몸을 실은 시간은 오전 7시 10분. 어둑어둑한 길을 달리는 ‘기대마’(기동대의 운송수단인 버스의 별명)에서는 ‘MC THE MAX’의 ‘사랑은 아프려고 하는 거죠’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중앙청사 일대에 2∼5명씩 한 조를 이뤄 곳곳에 배치됐다. 따가운 눈초리를 던지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반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최정민(23) 수경은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근무하고 있는데 삐딱한 시선을 받고 돌멩이를 맞을 때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농민시위가 있었던 날은 최악이었다. 중대원 94명 가운데 61명이 다쳤다. 중대장도 무릎에 보도블록 조각을 맞아 부상했다. 김한영(23) 수경은 보도블록 조각을 머리에 맞고 며칠 뒤 뇌출혈로 입원했다.

신종기(23) 수경은 “시위대에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평화시위를 유도하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너무나 답답해진다”면서 “가족처럼 지내던 동료들이 바로 옆에서 시위대의 돌을 맞고 기절하는 것을 보면 순간 분노가 치밀고, 죽을지도 모르는 아수라장에서는 살아야겠다는 절박감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는 이들을 더욱 움츠리게 했다. 방한복을 입었더라도 찬 바람이 부는 길거리에 오랫동안 서 있으면 몸이 부르르 떨린다.

오후 1시 35분경 이동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버스를 타고 중국대사관에 도착한 시간은 10분 뒤인 45분경. “1중대 꼬리를 물어라.” 중대장이 지시하자 버스를 바짝 붙여 방어벽을 만들었다.

오후 3시경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대 50여 명은 의경 쪽에 등을 돌린 채 플래카드와 피켓을 치켜들고 “홍콩 정부는 노동자를 즉각 석방하라”고 외쳤다. 시위 인원은 점차 늘어 100여 명이 됐다.

갑자기 시위대가 중국대사관 쪽으로 몸을 돌려 고함을 질렀다. 의경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의경들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헬멧을 쓰기 시작했다. 시위가 예정 시간을 넘기자 의경들 사이에서 “빨리 끝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말을 들은 시위대 한 명이 신경질적으로 “짭새 봐라, ×××들”이라고 소리쳤다.

다행히 이날 시위는 ‘폴리스 라인’을 두고 몇 차례 신경전이 벌어지다 충돌 없이 끝났다.

오후 8시 반 내무반으로 복귀한 이들은 몸을 간단히 씻고 청소를 한 뒤 오후 10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이들에게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이들이 곤히 잠에 떨어졌을 때인 오전 1시경 기동대에 당일 경비계획이 하달됐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갈수록 격렬해지는 시위▼

집회·시위의 횟수는 줄고 있지만 전투경찰과 의무경찰 등 경찰 측 부상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집회·시위는 1만1036건이며 참가 인원은 292만8000여 명. 건수는 2004년에 비해 2.6% 줄었으나 경찰 측 부상자는 2004년 621명에서 893명으로 43.8% 늘었다.

2004년에는 중상자가 11명에 불과했지만 2005년에는 37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집회가 갈수록 대형화 폭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목 및 쇠파이프가 사용된 시위 건수는 2004년 2회, 지난해 3회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사용된 각목 및 쇠파이프는 2004년 50개에서 지난해 2710개로 크게 늘었다.

공사상자에 대한 위로금은 쥐꼬리다. 집회 진압 과정에서 순직하면 국비위로금은 최고 90만 원이다. 1급 사망자로 지정되면 경찰복지기금에서 5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4주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에겐 국비위로금 10만 원이 주어진다. 치료 기간이 1주 이하는 2만 원, 2주는 3만 원, 3∼4주는 5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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