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감? 죄책감?…이수일 前국정원차장 왜 자살했나

  • 입력 2005년 11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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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서일까.

이수일(李秀一)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 자살 원인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데다 자살 동기를 둘러싸고 검찰과 구속된 전직 국정원장, 정치권 등이 상반된 시각을 보여 의혹이 커지고 있다.

▽“죄를 지었다”=이 전 차장은 3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신건(辛建) 전 국정원장의 도청 개입 혐의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 차장이 3차 조사를 마친 직후인 15일 임동원(林東源), 신건 전 원장이 구속됐다.

이런 점에서 이 전 차장이 상관의 혐의를 모두 털어놓고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 전 차장이 조사를 받고 나서 신 전 원장이 전화를 걸어 ‘어떻게 진술했느냐’라고 물었고 이 전 차장은 ‘어떻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차장이 ‘도청 자체’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자살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한 검사는 “이 전 차장이 조사받으면서 ‘미안하다’고 하기에 ‘무엇이 미안하시냐’고 묻자 ‘도청 사실을 알고도 폐기를 못했으니 죄를 지었다’라며 울먹였다”고 전했다.

정치권의 압박도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동교동계나 민주당 측에서 “왜 윗사람(원장)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 이 전 차장에게는 심리적 압박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

이 전 차장의 변호인인 김모 변호사는 “이 전 차장은 검찰조사를 받은 뒤 매번 전화를 해서 밝은 목소리로 ‘조사 잘 받았다’고 했다”며 “검찰에서 진술을 강요 받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지인들, “전혀 자살 예견 못했다”=이 전 차장은 자살 직전 평소 친분이 있었던 몇몇 정치권 인사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차장은 지난주 한광옥(韓光玉) 전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은 중고교 동창으로 한 전 대표가 대통령비서실장 재직 시절 이 전 차장을 발탁했다. 한 전 대표는 “며칠 전 통화할 때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독한 사람”이라며 침통한 표정이었다고 한 전 대표 측의 인사는 전했다.

서울대 법대 동기로 친하게 지냈던 현경대(玄敬大) 전 의원도 “18일 이 전 차장과 통화했는데 목소리에 영 힘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자살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호남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전 차장은 신 전 원장이 구속된 다음 날인 16일 평소와 달리 점심 전 퇴근했으며 최근 퇴근을 일찍 하는 날이 부쩍 잦았다.

▽유서 있나 없나=경찰은 이 전 차장이 숨지기 전 자신의 심경을 정리한 유서를 남겼을 것으로 보고 아파트와 총장 집무실을 샅샅이 조사했으나 21일 오후까지 메모 한 장 발견하지 못했다. 평소 사용하던 컴퓨터도 조사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가족은 이 전 차장이 검찰 수사로 힘들어 하긴 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줄은 몰랐다며 자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부인 박모(57) 씨는 경찰에서 “13일 가족과 함께 청계산 등산을 하던 중 ‘괴롭다’는 말을 했지만 다른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소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이 전 차장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깨끗이 죽음을 택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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