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14%하락… 농민들 “비료값 건지려나”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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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한숨으로…추곡수매제 대신 공공비축제가 도입되면서 쌀값이 떨어지자 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24일 한 농민이 경기 용인시 원삼면 소재 미곡종합처리장에 공공비축용 쌀을 넘긴 뒤 쌀가마니에 기대서 있다. 용인=박영대 기자
땀이 한숨으로…
추곡수매제 대신 공공비축제가 도입되면서 쌀값이 떨어지자 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24일 한 농민이 경기 용인시 원삼면 소재 미곡종합처리장에 공공비축용 쌀을 넘긴 뒤 쌀가마니에 기대서 있다. 용인=박영대 기자
볏단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은 없었다. 경기 용인시 백암면에서 30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조용철(趙鏞哲·66) 씨. 그는 이달 중순 논 2000평에서 3800kg의 벼를 수확했다. 그러나 볏단을 차에 싣기도 귀찮았다. 정부가 쌀을 산지가격보다 높게 쳐 주는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이달부터 공공비축제를 도입하면서 쌀값이 작년보다 14%가량 떨어졌기 때문이다. 공공비축용 쌀을 매입하는 백암농협과 원삼농협은 도정하지 않은 벼 40kg짜리 한 포대를 5만3500원(1등급)에 사들이고 있다. 작년(5만8000원)보다 4500원 싸다.

○ “공공비축으로 쌀값 하락 못 막아”

조 씨와 같은 동네에서 농사를 짓는 심재호(沈載浩·58) 씨는 올해 초만 해도 정부가 어떻게든 쌀값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난달 초 농협이 자체 수매할 때와 같은 조건으로 공공비축용 쌀을 매입한다고 알려 왔다. 품종은 ‘추청벼(아끼바리)’, 가격은 등급에 따라 4만7000∼5만3500원으로 정해졌다.

정부가 읍면 단위로 배정한 공공비축 물량을 소화하려면 수매 조건을 농협 자체 수매분과 똑같이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추석을 앞두고 쌀값이 뚝 떨어졌다. 가격 하락세가 연말까지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야 할 텐데….’

심 씨의 마음이 급해졌다. 낟알이 익자마자 수확했다.

“작년만 해도 수확 직후 농협에서 차가 와서 실어가곤 했는데 올해는 쌀값이 싸서 그런지 직접 미곡종합처리장까지 날랐어.”

벼를 넘긴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벼 등급을 따져 수매 단가를 정하는 과정이 남았다.

벼 100kg을 도정해서 온전한 쌀이 83kg 이상 나오면 1등급. 1kg만 적게 나와도 2등급으로 떨어져 벼 한 포대의 가격이 500원 하락한다.

심 씨는 “등급에 따라 비료값도 못 뽑을 수 있어 판정을 기다리는 하루 동안 밥을 한술도 뜨지 못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형제, 친척, 지인 등 ‘자체 판매망’을 가동한다.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팔면 80kg짜리 한 가마에 5000원 정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

○ 투매 탓 시장가격 왜곡

쌀 목표가격(가마당 17만70원)과 산지 쌀값 차이의 85%를 보전하는 쌀 소득보전직불제 덕분에 농가 소득이 크게 줄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공비축제 도입으로 시장가격이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진교(徐溱敎) 연구위원은 “농가가 쌀을 투매하는 탓에 산지 시장의 가격형성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만큼 농협과 사설 미곡종합처리장이 가격을 정하지 않고 쌀을 일단 받은 뒤 나중에 쌀을 판 가격에 따라 정산하는 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용인=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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