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혈액에 혈우병 환자 감염됐다

  • 입력 2005년 9월 10일 1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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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바이러스(HIV)에 오염된 혈액제제에 의해 일부 혈우병 환자가 감염된 것이 진실’이라는 내용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HIV 감염 혈액이 의약품에 들어가더라도 제약사에서 불활성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완제품은 절대 안전하다”는 정부와 제약사의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또 이를 확대 해석할 경우 말라리아나 B형, C형 간염에 감염된 혈액이 들어가 경우에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서울고등법원 제25민사부(재판장 서기석)는 혈액제제 생산회사인 모제약사가 울산의대 조영걸 교수(미생물학교실)를 상대로 낸 명예•신용훼손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제약사가 HIV에 감염된 혈액을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하였고, 제조과정에서 정기적인 점검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등 HIV를 완벽하게 불활성화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HIV에 오염된 혈액제제를 제조하였으며, 혈우병 환자들은 이러한 혈액제제의 투여로 감염에 이르렀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조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제약사는 조교수가 2002년과 2003년 논문, 신문, 방송을 통해 “에이즈 감염환자의 혈액이 국산 혈우병제제의 원료로 사용됐고, 혈액제제를 먹은 혈우병 환자들이 에이즈에 걸렸으며, 혈액제공자와 감염 혈우병 환자의 HIV 유전자 염기서열이 매우 유사하다”라고 밝히자 이런 내용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이런 내용이 허위사실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진실’이라고 판결한 것.

1심에서 법원은 혈액제제에 의한 에이즈 감염에 대해 그 가능성은 인정했으나 결과적으로 제약사 손을 들어줬었다.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특히 이 사건의 피해자인 일단의 혈우병 환자들이 올 7월 이 제약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서울동부지법)에서 승소한 뒤 나온 판례로서, ‘불활성화 과정을 거친 의약품은 무조건 안전하다’는 정부와 제약사의 반론을 무색케 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제약사측은 “이번 판결이 사실 관계를 잘못 확인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대법원에 즉각 상고했다.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불활성화를 하면 에이즈 바이러스가 절대 활동할 수 없고, 이 과정에서의 인간적 실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못박았다.

이에 상대편 변호인인 현두륜 변호사(대외법률)는 “진실은 이미 드러났고, 이제 대법원의 법률심이 남았기 때문에 재판 결과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9월5일 동아닷컴이 특종보도한 ‘에이즈 감염 혈액으로 만든 의약품 수만병 유통’ 등 관련 기사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제약사에서 불활성화 과정을 거쳤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최영철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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