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허파’ 곶자왈 “숨이 가빠요”

  • 입력 2005년 7월 9일 0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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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역사공원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마구 파헤쳐진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곶자왈. 제주의 허파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곶자왈이 개발논리에 밀려 최근 크게 훼손되고 있다. 남제주=임재영  기자
신화역사공원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마구 파헤쳐진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곶자왈. 제주의 허파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곶자왈이 개발논리에 밀려 최근 크게 훼손되고 있다. 남제주=임재영 기자
《제주지역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곶자왈’이 무분별한 개발사업 등으로 위기에 처했다. 곶자왈은 흙 없이 부엽토(腐葉土)만으로 바위 위에 숲을 이룬 곳으로 지금도 미(未)기록 식물이 보고되는 ‘미지의 세계’다. 특히 빗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지하수를 형성하고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는 특성으로 인해 ‘제주의 허파’로 불린다. 》

▽곶자왈 파괴 현장=7일 오후 찾은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곶자왈은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곶자왈에 자생하는 30∼40년생 나무가 뿌리째 뽑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고 희귀 용암석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제주국제자유도시 7대 선도 프로젝트의 하나인 123만 평 규모의 ‘신화역사공원’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곶자왈 1만2000여 평을 마구 파헤쳤기 때문.

안덕면 지역의 또 다른 곶자왈도 골재 채취 등으로 이미 뭉텅 잘린 상태였다. 골재 채취가 수만 평에 걸쳐 이뤄져 곶자왈은 원형을 잃어버렸고 자연 복원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개장한 북제주군 한경면 지역 B골프장과 L골프장은 곶자왈 한복판에 골프 코스가 조성돼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됐다.

곶자왈에 자생하는 때죽나무, 종가시나무 등이 그루당 100만 원을 호가해 인기를 끌면서 곳곳에서 무단 채취도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곶자왈이 개발사업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은 그동안 자연생태, 지질적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

2, 3년 전부터 중요성이 인식된 곶자왈 지대는 크게 조천∼함덕곶자왈, 구좌∼성산곶자왈, 한경∼안덕곶자왈, 애월곶자왈 등 4개 지대로 나뉜다. 면적은 109.9km²로 추정된다.

곶자왈 탐사전문가 김효철(金孝哲) 씨는 “곶자왈은 생태계보전지구 3, 4등급으로 지정돼 있어 개발이 가능한 상태”라며 “정밀 조사를 거쳐 등급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곶자왈인가=한라산 자락인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곶자왈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한 곳 중 하나.

곶자왈에 들어서자 잎 길이가 50cm를 넘는 ‘큰톱지네고사리’가 군락을 이뤘다. 한국 미기록종인 ‘제주암고사리’를 비롯해 ‘변산일엽’, ‘새우란’ 등 희귀식물들이 눈에 띄었다.

갖가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마치 ‘정글’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노루, 새, 곤충들의 훌륭한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제주도문화재 전문위원 김봉찬(金奉燦) 씨는 “천량금, 개톱날고사리, 골고사리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곶자왈은 보온, 보습 효과가 뛰어나 북방한계식물과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특이한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곶자왈의 훼손을 막기 위해 제주지역 동식물 생태전문가와 시민 등으로 구성된 ‘곶자왈사람들’(www.gotjawal.com)이 올해 1월 출범했다.

이 단체 송시태(宋時泰) 상임대표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자연생태와 지질을 간직한 곶자왈을 보전하기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곶자왈:

‘화산폭발 때 용암이 크고 작은 암괴로 쪼개지면서 요철지형을 이룬 곳에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자연림을 이룬 지역’을 뜻하는 제주 말.

남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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