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댁의 자녀는 안맞습니까?

  • 입력 2005년 3월 11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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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에서 선배들이 때리면 몇 대까지 맞으면 돼요?”

중학교 신입생인 아들의 이 같은 질문에 지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

헐렁한 교복에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아들을 붙잡고 앉아 물어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학년과 덩치 큰 동급생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모들만 잘 모를 뿐 일상화된 학교 폭력에 아이들은 이미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청소년기의 폭력을 성장기에 거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성장통(成長痛), 또는 또래문화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학교 폭력 사태는 이런 감성적 접근 단계를 이미 넘어선 것 같다. 나이도, 성별도, 공부 잘하고 못하고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두루누리(유비쿼터스) 폭력’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더욱이 현직 교사가 한 강연회에서 밝힌 이른바 ‘일진회’의 폭력성 음란성, 그리고 대담함의 정도는 귀를 의심케 한다.

학교 폭력에서 중요한 점은 가해자 대부분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반면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는 평생을 간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교사들에 따르면 학부모가 학교 폭력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오해는 ‘우리 아이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믿음이라고 한다. 특히 자신의 아이가 각종 폭력 행위나 비행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의 학부모는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 아이는 파리 한 마리 못 죽인다.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 이들 학부모의 예외 없는 첫 반응이라고 한다.

무엇이 학교를 이종격투기장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다. 공부 부담과 성적지상주의, 끝이 없는 입시 스트레스, TV 영화 인터넷을 통한 폭력문화,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과 인성교육의 부재 등등.

개인적으로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억지로 학원 보내기’이다. 교사들에 따르면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이들이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스트레스를 푸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한 중학교에서 신입생들에게 지금까지 자신을 가장 불행하게 만든 사람과 가장 불행했던 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0%가량이 ‘부모’와 ‘학원 가기’를 꼽았다고 한다. 학원비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부모 입장에서야 펄쩍 뛸 노릇이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공부의 ‘필요성’을 강요하는 부모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아이들 사이의 괴리가 극단적 폭력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학교 폭력을 우려하는 여론이 확산되자 정부는 ‘학교 폭력 자진신고 및 피해신고 기간’을 운영하기로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학교 폭력의 특성상 가해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피해자는 보복을 두려워하므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학교 폭력은 정부나 경찰이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대책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학부모들의 세심한 관찰과 관심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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