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독버섯 ‘일진회’]<下>근절대책 없나

  • 입력 2005년 3월 1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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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한 고교생이 학교폭력을 못 견뎌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일을 계기로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경찰은 이른바 ‘일진회(一陣會)’ 등 학내 폭력서클 집중단속에 나서면서 두 달 만에 학생 2만3000여 명을 붙잡아 이 중 9000여 명을 구속했다.

교육인적자원부 등 각 부처는 그 후에도 연례행사처럼 학교폭력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학교폭력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됐고 수법도 잔혹해졌다.

▽‘땜질 처방’이 학교폭력 키워=학부모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확한 실태조사도 없이 이벤트성의 땜질처방을 내놓는 바람에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당시 입법과정에 참여했던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송연숙(宋姸淑) 사무국장은 “이 법은 16대 정기국회 마지막 회기일에 다른 법안과 함께 날림으로 처리됐다”면서 “교육부의 입김으로 시민단체들의 의견이 공청회 과정에서 변질됐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학부모와 외부인사 위주로 구성할 것을 주장했지만 교육부의 강력한 요구로 교장이 위원장을 맡도록 입법돼 ‘문제를 드러내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되도록 덮는 식’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

법령에는 피해자 보호 및 치료, 가해자 선도 등에 관한 아무런 구체적 대책이 없으며 학교폭력상담실 및 전담 상담교사제 도입도 예산문제로 좌절됐다.

‘학기당 1회 이상 예방교육 실시’라는 시행령 규정은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훈화하는 방식으로 건성건성 집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시행 1년도 안 된 이 법의 개정 운동에 나섰다.

▽대안은 없나=학교는 ‘선도’의 명분 아래 문제를 숨기려고 하고 경찰은 범죄를 구성하는 단계가 되면 사법처리하지만 그전까지는 방관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나 경찰이 고립적이고 분산적으로 학교폭력 문제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행태다. 전문가들은 발상의 대전환을 주문한다. 우선 학교에서 폭력서클의 존재 등을 숨기거나 ‘방관-대형사건 발생-관련자 처벌’이라는 대증요법에 그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실태조사를 통해 문제를 과감하게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관련교육 의무화 등 실효성 있는 예방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 서울대 곽금주(郭錦珠·심리학) 교수는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규교과목에 학교폭력 예방프로그램을 편성해 가르치고 있다”면서 “우리는 아직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교육청-경찰-보건소-지자체’ 등 지역사회가 연계한 네트워크 구성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잇따르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인 서울대 문용린(文龍鱗·교육학) 교수는 “일본 오사카(大阪)는 지사가 청소년문제 담당 산하기관을 만들어 직접 해결에 나서 학교폭력을 눈에 띄게 줄였다”면서 “지방정부가 솔선수범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외국의 학교폭력 대책은▼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통한 학교폭력 및 청소년범죄의 해결은 미국,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보편화돼 상당한 실효성을 거두고 있다.

호주의 ‘청소년 지역연계활동(YACCA·Youth And Community Combined Action)’이 대표적인 예. 호주 퀸즐랜드 주는 1992년부터 이 네트워크의 운영으로 청소년 비행 급증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주 정부의 재정적 지원 아래 이 지역 그리피스대의 범죄정책사회안전연구소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학교, 경찰과 지역 비정부기구(NGO)는 물론 상인연합회까지 참여해 단순히 청소년 선도 차원에 그치지 않고 회계, 정비, 조경 등 다양한 직업교육과 연계했다.

미국 캔자스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운영되는 ‘중서부지역 예방프로젝트(Midwestern Prevention Project)’는 대상 청소년에 대해 최소 5년 이상의 장기 프로그램을 실시해 지역 내 청소년 비행을 크게 줄였다.

일본의 ‘소년지원센터’는 경찰이 중심이 된 프로그램 운영이 특징. 경찰청이 학교와 연계해 청소년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적대적 관계’로 인식되곤 하던 경찰과 청소년 간의 거리를 좁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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