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포커스 피플/인천사연구소 김상태소장

  • 입력 2005년 2월 11일 20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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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내동 감리서 감옥∼중구 용동 마루턱∼벼리고개(부평에서 만수동 방향 고개)∼부평∼양화도∼남대문∼청파(동)∼삼남행.’

백범 김구(金九·1876∼1949) 선생이 1898년 3월 19일 밤 인천감옥을 탈출 한 뒤 서울로 도피한 행로다.

이같은 백범의 도피행로는 체계적인 인천 역사연구를 통해 내 고장 역사를 바로 알자는 취지로 설립된 ‘인천사연구소’가 수년간의 문헌조사와 증언청취 등을 통해 밝혀낸 것.

백범은 1946년 전국 순회 당시 가장 먼저 인천을 방문한 뒤 백범일지(359쪽)에서 ‘인천은 내 일생에 뜻 깊은 곳이었다. 스물두 살에 인천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스물세 살 때 탈옥 도주하였고….’라고 기록했다. 그 만큼 그는 인천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인천사연구소 김상태 소장(45)은 “내 고장 역사 바로 알기를 통해 주민들의 애향심을 키우고 자부심을 갖도록 돕는 것이 연구소 설립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인천역사에 대한 오류가 많으며 인천시사 등 관련 서적에 오류가 그대로 기록되고 알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뜻있는 사람들과 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는 것.

인천에서는 지역 역사전문가인 박광성 교수(인하대)가 작고(1994년)한 뒤 인천의 역사를 바로 잡는 작업이 소홀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경주 공주 등 역사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주민들의 역사의식은 대단합니다. 그 의식은 애향심이란 힘으로 발휘되지요.”

2002년 10월 설립된 이 연구소에는 인천 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 교수 교사 학생 등 168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김 소장과 회원들은 조선시대에 인천군이 도호부로 승격된 과정에 대한 역사 기록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인천부읍지’에는 세종의 비(妃)인 소헌왕후(심씨)의 외향(외가)이 인천이어서 인천이 세조 6년(1460년) 도호부로 승격됐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김 소장과 회원들은 각종 문헌에 따르면 소헌왕후의 외향은 인천이 아니라 경북 영주시 순흥면인데 왜 인천을 도호부로 승격시켰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 때부터 김 소장과 회원들은 김정호의 대동지지와 조선왕조실록, 읍지(邑誌) 등을 밤낮으로 비교 검토한 결과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윤씨)의 외향이 인천이어서 군에서 도호부로 승격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승격 년도도 세조 6년이 아닌 5년이란 사실을 찾아냈다.

조선시대에 쓰여진 각종 역사 관련 서적도 당시 지방에서 일어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던 것.

김 소장은 “테마별 인천역사 기행, 인천지역 항일운동 학술세미나 등 주민과 함께 하는 역사 프로그램을 통해 내 고장 역사 바로 알기 운동을 벌여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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