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경준]기아車인사비리, 전화위복 계기 삼자

  • 입력 2005년 2월 10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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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는 서바이벌 게임, 즉 ‘누군가가 먼저 죽어 나가야 하는 게임’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진행되고 있다. 10년 전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반엔 전 세계의 자동차회사가 10개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고 상황은 그대로 전개됐다. 미국의 GM, 포드, 유럽의 다임러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 르노, 푸조, 피아트, 일본의 도요타, 혼다,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가 살아남은 회사다. 살아남은 10개 회사조차 2010년까지 6개 내외로 줄어들 전망이고 이러한 산업 재편의 중심에 도요타와 현대·기아차가 있다. 도요타는 부동의 2위이던 포드를 앞섰고 이제는 세계 1위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10년 전 현대차가 10대 회사로 생존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현대차는 생산 대수 기준으로 혼다를 제치고 7위로 올라섰고 이제 글로벌 톱5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유럽시장에 대한 일본차와 현대차의 공략이 성과를 거두면서 유럽 자동차회사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유럽 내 2위 업체인 폴크스바겐은 근본적인 지배구조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폴크스바겐은 상법상 주식회사가 아니라 폴크스바겐 법에 따라 설립된 회사이고 소유지분에 관계없이 개인 주주의 의결권을 20%로 제한하며 주요 결정에 대해선 주주 80%의 찬성을 요구한다. 대주주는 니더작센 주정부로 노조의 입김이 강한 반관영 기업이다. 법과 정부의 보호 아래 적대적 인수 위협은 줄일 수 있었으나 그 대가는 컸다. 노조의 동의 없이는 라인 조정도 못하고 실업자 구제를 위한 과잉 고용을 강요받았다.

폴크스바겐의 지배구조는 국내외 시장의 구분이 있던 시절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이 글로벌화하면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폴크스바겐은 현재 변화된 환경에서의 생존을 위해 ‘ForMotion’이라는, 40억 유로의 경비절감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이는 글로벌 경쟁에선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배구조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얼마 전 문제된 기아차 광주공장 채용 비리는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 터져 나온 것이다. 노조가 채용에 간여하고 제도를 악용해 무자격자를 입사시키는 기업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생존하기는 어렵다.

이번 채용 비리 사건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효율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면서 진정한 글로벌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목이 공론화됐다는 점에서 오히려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어두운 과거사의 청산 없이 기아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기는 어렵다. 많은 전문가가 불안정한 노사관계를 국내 자동차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경영진과 노조 사이에 분명하고 합리적인 역할 분담 원칙이 정립될 수 있다면 기아차가 세계 자동차산업의 진정한 강자로 부상하는 근본 바탕이 될 것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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