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노총 ‘취업장사’ 남의 탓 말라

  • 입력 2005년 1월 26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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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기아자동차 노조간부의 채용 비리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엿새 전 ‘유감’이라며 적당히 넘어갔던 것과 달리 어제는 ‘깊은 사죄’라는 표현을 써 가며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철저한 자정(自淨) 노력을 해 나가겠다는 다짐도 했다. 기아차 노조를 휘하에 거느린 민주노총이 늦게나마 자신들의 책임을 깨우쳤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이번 사건의 심각성과 노동운동의 위기 현실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사죄보다는 구차한 자기방어와 책임 떠넘기기에 더 많은 양을 할애한 기자회견문이 단적인 증거다.

기아차의 전근대적인 노무관리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총이 ‘이번 사건의 본질은 사(使)측의 입사 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노조의 힘이 회사의 고유 경영권인 채용을 좌지우지할 만큼 비대해졌고, 노조 간부가 이를 사적인 이익 추구에 악용하는데도 노동운동 내부에서 자기검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노조 간부가 ‘사측의 매수놀음에 놀아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궤도 이탈이 낳은 ‘필연적 우연’인 것이다.

‘일부 보수언론들이 이 기회에 민주노동운동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권력화, 귀족화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지적과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충고가 노동운동 약화 기도란 말인가. 이런 남 탓을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민주노총의 적(敵)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충고도 듣지 않고 견제는 더욱 마다하는 독선(獨善), 나의 기득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이기주의, 대화보다 힘을 앞세우는 투쟁우선주의가 존립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민주노총이 살려면 이런 ‘내부의 적’부터 물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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