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희(金春姬·80·서울 양천구 신정동) 할머니가 그 주인공.
김 할머니는 11일 사후에 장기와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김 할머니는 또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겠다는 약정서에도 서명했다.
전 재산이라고 해봐야 지금 살고 있는 옥탑방 전세금 1500만 원이 전부. 부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로 매달 생계비로 지원되는 30만∼35만 원으로 살아야 하는 김 할머니에게는 엄청난 금액이다. 김 할머니는 예금통장에 있는 1000만 원도 곧 기부할 예정이다.
김 할머니의 80년 삶은 참으로 신산스러웠다. 그러나 평생 이웃과 함께했기에 행복했다.
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투사였다. 김 할머니도 간호사로 일한 인텔리였다.
1945년 김 할머니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 그러나 그게 가족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6·25전쟁이 터지고 남과 북을 가로막은 휴전선에 의해 평생 가족과의 재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쟁 와중에 김 할머니는 간호사 면허증도,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입증하는 서류도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절망하지 않았다. 봉사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충남 홍성군의 한 보육원에서 10년간 아이들을 돌본 게 봉사의 시작이었다. 행상을 하며 번 돈의 대부분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썼다.
그렇게 산 게 어느덧 50여 년. 최근 20년간은 정부에서 준 생계비에서 20만 원씩을 뚝 떼어내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놨다. 정작 자신은 사회복지관에서 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김 할머니는 얼마 전 당뇨병과 뇌중풍(뇌졸중)을 앓아 한때 몸무게가 38kg까지 떨어질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었다. 다행히 지금은 몸이 많이 나아진 상태. 하지만 김 할머니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내 몸도 나라에서 돈을 줬기 때문에 건사할 수 있었어요. 어떤 돈인데 함부로 쓸 수 있나요? 살아있는 동안 그 돈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왔으면 좋겠어요.”
다 나눠주고 홀가분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김 할머니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천사의 얼굴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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