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大 1회졸업생 ‘고일회’멤버들 “월요일엔 약속 안잡아요”

  • 입력 2004년 12월 20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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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년 세월, 친구들은 삶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고려대 제1회 졸업생 모임인 ‘고일회’가 20일 송년회를 갖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재휘 김수명 서태원 김영옥 이중재 최영곤 김진웅 서정석 조동표 김상순 이종우 문병윤 황주하 씨.신원건 기자
“지난 60년 세월, 친구들은 삶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고려대 제1회 졸업생 모임인 ‘고일회’가 20일 송년회를 갖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재휘 김수명 서태원 김영옥 이중재 최영곤 김진웅 서정석 조동표 김상순 이종우 문병윤 황주하 씨.신원건 기자
서울 종로구 청진동 한일관 3층 ‘채송화룸’. 이 방은 1년 내내 매주 월요일 점심 예약이 돼 있다. ‘고일회(高一會)’ 회원들이 이곳에서 20년 동안 모임을 갖고 있기 때문. 20일에는 이곳에서 올해 송년모임을 가졌다.

고일회는 1943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해 광복 이후 종합대학이 된 고려대를 1회로 졸업한 동창생들의 모임. 이날 점심 메뉴는 냉면 한 그릇에 복분자주. 조촐한 상차림이지만 팔순을 넘긴 동창생들은 서로 “야!” “너!”하면서 60여 년 전 광복 전후의 학창시절로 돌아가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고일회는 1980년대 초 고 김원기(金元基)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고려대 교우회장을, 이중재(李重載) 전 의원이 상근 부회장을 맡고 있을 때 시작됐다. 김진웅(金振雄) 전 고려대 총장 서리, 서태원(徐泰源) 전 의원 등 현재 모이는 회원은 13명 정도.

이들은 일제강점기 말 학병, 징병, 징용 등으로 고난을 당했고 광복 후 좌우익 대립을 겪는 등 격동의 세월에 대학을 다녔다. 서태원 고일회 회장은 1944년 일본군에 징병으로 끌려가 광복을 맞았고 6·25전쟁 때는 북한 의용군으로, 1·4후퇴 때는 남한의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되기도 했다.

고일회는 2003년 대학 동창회로는 처음으로 ‘입학 60주년 기념 모교방문 행사’를 가졌다. 1943년 입학해 동창생으로 지낸 기간만도 환갑에 이른 것.

올해는 국가보안법 등을 놓고 어느 때보다도 이념 대결이 심했던 해. 송년모임에서도 정치 얘기가 나오자 김수명(金秀明·전 효성물산 부사장) 씨가 “아이고, 친구끼리 모였는데 정치 얘기 그만혀∼” 하고 말린다. 이에 옆에 있던 스포츠 해설가 조동표(趙東彪) 씨가 전날 한국축구가 독일을 상대로 3-1로 쾌승한 얘기를 꺼내자 “모처럼 우리 사회의 엔도르핀을 돌게 한 승리”라며 모두들 즐거워했다.

서정석(徐正錫) 씨는 “2001년 모임 때 고 한만년(韓萬年) 전 일조각 회장이 정치 얘기만 나오면 만날 싸우니까 친구들끼리는 가급적 정치 얘기를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며 “이것이 우리 모임의 장수비결”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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