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실업률 왜 차이나나…돈 안받고 집안사업 도와도 “취업”

  • 입력 2004년 12월 12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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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서울 A 대학 서반아어학과 졸업생은 총 108명. 이 가운데 대학원 진학자(18명)와 군 입대자(1명)를 뺀 89명 가운데 41명만 일자리를 잡았다. 2명 중 1명은 실업자인 셈이다.

하지만 취업을 하지 못한 48명 중 △10명은 계속 구직활동 △30명은 학원에서 취업 준비 △8명은 구직을 포기한 채 사업구상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통계청 집계 방식에 따른 지표 실업률은 19.6%에 그친다. 학원에 다니는 30명과 구직단념자 8명은 실업률 산정 대상에서 아예 빠지기 때문이다. 통계상의 공식 실업률은 이처럼 현실과 괴리돼 있다.

▽‘백수’ 천지인데 공식 실업률은 3%대=통계청의 공식 실업률은 2001년 이후 줄곧 3%대에 머물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4.6∼4.7%에 그칠 것으로 보이는 올해에도 실업률(1∼9월 평균)은 3.5%에 불과하다. 지표상으로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한국의 고용사정이 훨씬 좋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실업률 산정 방법이 경기 변화나 고용시장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체감 실업률과 지표 실업률이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 구직단념자와 ‘취업을 위한 학원·기관 통학자’(통계청 공식 표현)가 전업주부와 같은 ‘비(非)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기 때문.

구직단념자는 ‘취업 의사와 능력은 있지만 노동 시장적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자 가운데 지난 1년간 구직경험이 있었던 사람’이다. 통학자는 고시학원이나 직업훈련원에 다니는 취업 준비생이다.

올해 구직단념자(10만1000명)와 통학자(20만5000명)는 30만6000명에 이른다. 현재 실업률은 실업자를 경제활동인구로 나눠 산출되기 때문에 비경제활동인구인 이들 ‘유사 실업자’들은 통계 구성 항목 자체에서 빠진다.

▽돈 안 받고 집안일 도와도 취업자로 집계=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자영업주와 무급가족종사자 비중도 한국의 실업률을 왜곡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무급가족종사자는 임금을 받지 않고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을 돕는 사람이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주와 무급가족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미국(7.2%) 일본(15.4%)보다 월등히 높다.

요즘처럼 내수가 부진하면 자영업주들은 반(半)실업 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도 취업자로 분류된다. 실제로 노동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44.36%는 월 소득이 4인 가족 최저생계비(2003년 101만 원)에도 못 미친다.

서강대 남성일(南盛日·경제학) 교수는 “경기 악화로 어쩔 수 없이 행상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도 현행 실업률 통계에서는 이들을 모두 자영업주나 무급가족종사자로 분류해 취업자로 본다”고 말했다.

▽‘고용의 질’ 반영 안돼=일용직이나 임시직도 상시 근로자와 똑같은 수준의 취업자에 포함되는 점도 실업률이 낮게 산출되는 한 요인. 삼성경제연구소가 통계청 자료를 재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일주일에 1∼17시간 근무자는 1998년 47만 명에서 올해는 73만1000명으로 55% 늘었다. 18∼35시간 근무자도 같은 기간 36% 증가했다.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임시직과 일용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가깝다. 일주일에 하루 일하는 사람까지도 취업자로 간주할 경우 공식 실업률은 낮아지지만 숫자 속에 감춰진 ‘고용의 질’은 상당한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불완전활용도를 기준으로 계산한 실질 실업자 수는 정부가 집계한 순수 실업자(81만7000명)에 구직단념자(10만1000명)와 주 35시간 미만 근무자(259만5000명)를 더한 351만3000명이나 된다. 여기에 이 연구소가 감안하지 않은 통학자와 저소득 자영업주까지 합하면 실제 실업자 수는 훨씬 늘어난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孫珉中) 연구원은 “7개의 고용 지수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처럼 한국도 다양한 보조 지표를 개발해 고용시장에 대한 각종 정보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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