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강원]“우수 中3 학생 잡아라”

  • 입력 2004년 11월 7일 20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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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중3 학생을 잡아라.”

고교 신입생 모집을 앞두고 전국의 농어촌 및 중소도시의 고교들이 중학교 졸업생을 유치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주민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농어촌 지역의 경우 중학 졸업생 수가 고교 입학정원을 수년째 밑돌아 고교의 학생 모시기 경쟁은 대학의 신입생 유치전을 방불케 한다.

▽고교 교사 출입금지=지난달 전북 정읍의 한 중학교 교장은 ‘신입생 유치를 목적으로 한 고교 교사들의 학교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관내 고교에 보냈다.

정읍의 한 사립고 교사 김모씨는 해마다 이맘때면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

그는 “수업시간에 자율학습을 시키고 중학교를 찾아다니고 저녁에는 중학생 집을 찾는다”며 “가정 방문길에 다른 고교 교사를 만나 얼굴을 붉히거나, 여러 학교의 조건을 물건 흥정하듯 비교하는 학부모를 보면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경북 도내 79개 실업계 고교들은 인문계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중학교교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포항의 한 실업계 고교 부장교사는 “신입생 300명을 채우기 위해 자존심은 묻어두고 선거에 나선 후보처럼 백방으로 뛴다”고 말했다.

일부 사립고는 동문회까지 나서 수천만원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형편이 어려우면서 성적이 우수한 중 3 학생의 담임과 학부모는 집중적인 ‘접촉 대상’이 된다.

명문대 합격생 수를 기준으로 고교 서열을 매기는 풍토에서 우수 신입생을 유치해야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장학금과 기숙사 무료 등 조건은 물론 수백만원의 ‘웃돈’까지 거래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까지=이처럼 농어촌 고교들이 신입생 모집전쟁에 내몰리는 것은 입학 학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우수 학생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전남 나주지역의 경우 2005학년도 고교 모집정원은 12개교 1363명이지만 관내 중학교 졸업생은 모집정원의 57.3%인 14개교 781명에 불과하다.

경북지역 200개 고교의 입학정원은 3만4000여명에 중3 졸업예정자는 3만2400여명(94%).

사정이 이렇자 일선 자치단체들까지 나서 내 고장 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전북 김제교육청은 최근 학부모와 교직원 지역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 발전을 위한 내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 연찬회’를 열었다.

나주시는 우수 중학생이 지역의 고교에 남도록 하기 위해 관내 고교로 진학할 경우 성적에 따라 장학금을 주고 있다.

강원도에서도 상당수 자치단체에서 수년 전부터 ‘내 고장 학교보내기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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