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를 다시 본다]“헌법주인은 국가 아닌 국민”

  • 입력 2004년 10월 24일 18시 35분


코멘트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통치구조를 정한 국가의 최고 규범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헌법에 대한 최고의, 그리고 최종적인 해석권한을 가진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국민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도 있다. 수도 이전 헌법소원 위헌 결정도 그중 하나다.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생겨나게 됐으며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지, 외국의 사정은 어떤지 등을 점검해 본다.》

▼판단 기준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판단할까.

판단의 1차적인 기준은 물론 ‘헌법전’이다. 헌재의 재판실무지침서인 ‘실무제요’는 헌법전에 포함된 개별규정을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하면서 여기에 △개별규정의 근저에 놓인 헌법원칙이나 근본적 결단 △헌법관습법을 포함시키고 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판단의 기준은 ‘국민의 뜻’이라고 헌법학자들은 말한다. 헌법의 주인이 국민이므로 그 주인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민의 뜻’=1987년 10월 개정된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헌법을 개정한다”고 돼 있다. 주어를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국민’이라고 지칭한 것은 헌법의 주인이 국민임을 강조한 것. 헌법 제1조 2항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은 국회의 권한으로 두면서도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민이 직접 투표해야 하도록 헌법에 정한 것도 ‘헌법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재가 결정 과정에 ‘국민 대다수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존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헌재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특정 법률이나 공권력의 행사 등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헌재가 내린 중요 사건에 대한 결정 결과도 모두 민의(民意)와 일치한다. 3월 정치권의 정치공방으로 시작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에 대해 헌재는 심리 두 달 여 만에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당시 여론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 자체가 잘못된 일이며 노 대통령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지만 탄핵까지 끌고 간 야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와 수도 이전 헌법소원 문제에 대해서는 ‘폐지 반대’와 ‘수도 이전 반대’의 목소리가 더 높았다. 그리고 헌재의 결정도 이와 흐름을 같이했다. 물론 이것은 시류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여론과는 구별된다.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헌재가 국민의 뜻을 신중히 고려하고 존중한 결과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적극적 해석으로 나타난다.

헌재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관습헌법’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동원해 이 법이 ‘헌법 개정 과정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해석했다. 이는 헌법과 헌법원칙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헌재가 5월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을 기각하면서 “대통령이 일부 법을 위반하기는 했지만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도 바로 국민의 기본권을 고려한 적극적인 해석의 결과다. 대통령 파면은 국정공백 등 국가적 손실을 가져와 국민이 큰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이를 감수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이 아니면 파면할 수 없다는 논리다.

헌재법은 대통령의 탄핵사유를 ‘직무집행상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로만 정하고 있지만 헌재는 이를 ‘중대한 법 위반’으로 적극 해석한 것이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헌법재판소의 주요 기능
기능내용
위헌법률 심판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심판
탄핵 심판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 고위직 공무원이 직무 직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해 국회가 탄핵소추했을 때 해당 공무원에 대한 파면 결정을 선고할 수 있는 심판
정당해산 심판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의 제소에 따라 정당 해산을 심판하는 제도
권한쟁의 심판국가기관과 국가기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지자체와 지자체 사이에서 권한의 범위 등에 관한 다툼이 있을 때 헌법 해석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심판 제도
헌법소원 심판공권력으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된 국민이 기본권을 구제해 줄 것을 청구할 때 이를 심판하는 제도

▼헌재의 어제와 오늘▼

현재의 헌법재판소는 1987년 ‘6·10항쟁’의 산물이다. 5·16군사쿠데타 직후의 5차 개정으로 없어진 헌법재판소 제도가 6·10항쟁 후 이뤄진 9차 헌법개정 때 부활됐다.

그 사이에는 대법원이 위헌심사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미흡했다는 판단에 따라 이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별개의 헌법기관을 만든 것.

헌법재판소는 이처럼 정치적 상황 변화에 의해 탄생했으며 그 역할 및 권한 역시 법리적 판단뿐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하도록 규정돼 있다.

▽헌재의 어제와 오늘=1988년 9월 1일 발족한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지나치게 보수적인 결정으로 시대 흐름을 따르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아왔다.

헌재는 1994년 7월 토지초과이득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1996년 10월 영화 상영 전에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도록 했던 영화법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1997년 7월에는 동성동본결혼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9인의 재판관=재판관 9명 중 3명은 대통령이, 3명은 국회가,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이외에는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

“현 재판관 6명의 임기가 끝나는 2006년 이후에는 ‘헌재의 이념적 성향’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일부 관측도 이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정년은 재판관이 65세, 소장은 70세이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헌법재판관 프로필
이름 나이출신 지역출신 대학임명 또는 선출 기관임기 만료
윤영철(소장)67전북 순창서울대 법대대통령 임명2006년 9월
이상경59경북 상주중앙대 법대국회(민주당)2010년 2월
권성63충남 연기서울대 법대국회(한나라당)2006년 8월
김효종61충남 연기서울대 법대국회(한나라+민주)2006년 9월
김경일60광주서울대 법대대법원장 지명2006년 9월
송인준60대전서울대 법대대통령 임명2006년 9월
주선회56경남 진해고려대 법대대통령 임명2007년 3월
김영일64서울서울대 법대대법원장 지명2005년 3월
전효숙53전남 순천이화여대 법대대법원장 지명2009년 8월

▼헌법해석 분쟁 외국에선▼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처럼 각국은 헌법을 둘러싼 해석과 분쟁을 해결하는 헌법재판기관을 두고 있다. 하위 규범인 법률이나 국가의 공권력 행사가 최상위 규범인 헌법에 어긋날 경우 이를 통제하는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기관을 어떻게 두느냐는 나라에 따라 다르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는 우리처럼 독립된 제4부로서의 헌법재판기관을 두고 있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 영미법계 국가는 대법원이나 의회의 상원에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재판관은 16명. 연방상원과 연방하원이 각각 8명씩 선출하며 임기는 12년으로 중임(重任)할 수 없다. 대통령 탄핵심판과 법률의 위헌심판 기능 등이 법률로 명시돼 있다. 평의와 표결은 비공개로 이뤄진다. 탄핵심판사건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헌법사건에서 소수의견은 공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9명의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승인한다. 이때 후보자에 대한 공청회(우리의 청문회에 해당)가 열린다. 연방대법원장은 대법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처럼 위헌심사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대통령 탄핵심판은 상원에서 맡는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