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경미]그 많던 똘똘이들 다 어디 갔나

  • 입력 2004년 9월 10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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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하나. “옥동자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책의 전형적인 결말을 읽어 주자 조카는 “어머, 큰일 났어, 옥동자를 낳았대, 어떻게 해”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옥동자를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특이한 얼굴로 유명한 ‘개그맨 옥동자’로 생각해, 옥동자를 낳았다는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에피소드 둘. 얼마 전 한 동료는 연구보고서를 마무리 짓느라 집중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를 건 아들에게 ‘작업 중’이라고 했더니, 아이는 시무룩하게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말이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는 공통적으로 느끼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할 줄 아는 것이 너무 많다. 영어만 해도 중학교에서 처음 알파벳을 배운 부모 세대에 비해 요즘은 초등학생도 엔간한 영어 단어를 말한다. 또 과외 때문인지 국영수 등 주요과목에서도 뛰어난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등학생의 실력은 한 해가 다르게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조숙하고 다재다능하던 초등학생들이 다 어디로 갔기에, 또 고등학교에 이르는 경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고등학생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인가.

‘옥동자’나 ‘작업 중’이라는 단어의 의미 해석에서 보듯이 매스미디어는 아이들의 정신세계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TV나 인터넷에 탐닉하는 것과 반비례해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하고 숙고하는 능력은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어려서부터 사교육에 노출되어 상당한 지식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스스로 생각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점점 부족해지는 것이다. 어렸을 때 강행군을 한 피로감으로 일찍 지쳐 버리는 것도 나중에 학력 저하가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된다. 공부는 적어도 10년을 넘게 뛰어야 하는 장거리 경주인데 초반부터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타의로 전력 질주하다 보니, 부모의 통제력이 약해지는 시기에 이르면 학생들의 학력 조로(早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TV와 인터넷 중독은 독서의 부재로 이어지고 그 결과 어휘력에서도 공백이 나타난다. 얼마 전 황당한 상황을 경험했다. 아이가 국어 문제집을 풀다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이 시가 어떤 계절을 노래한 것인지 묻는데, 아무래도 아지랑이가 힌트인 것 같아. 엄마, 아지랑이가 언제 피는 꽃이야?”

생각해 보면 TV나 인터넷처럼 전방위로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매체는 없는 듯하다. TV나 인터넷이 제공하는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차분히 한장 한장 읽으면서 정신적 충족감을 느껴 가는 독서가 어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는 물질적으로 척박한 조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정신적으로는 더 풍요로운 환경이었던 것 같다. 별 오락거리가 없으니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유의 방식을 경험하고, 냉난방 시설이 없어 춥고 더운 것을 견뎌내며 인내심을 키우고, 일찍부터 사교육에 내몰리지 않아 혼자 공부하면서 점차 가속도를 내는 저력을 가질 수 있었다.

고리타분한 얘기이겠지만, 자녀를 TV와 인터넷에서 적당히 격리시켜 책을 가까이하게 하고, 이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도록 인도하는 것이 이 시대에 제대로 된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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