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간첩조작 의혹 83∼86년 66건

  • 입력 2004년 6월 2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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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金昌國)가 2일 국가기관으로서는 최초로 국가보안법에 대한 ‘인권실태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보안법 적용상에 나타난 인권실태’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인권위가 지난해부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 의뢰해 만든 국보법 관련 사안들을 총망라한 것.

인권위는 “보고서 내용이 위원회 공식입장은 아니다”고 밝혔지만 제정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보법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를 광범위하게 담고 있어 앞으로 있을 국보법 개폐 논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주요 사례=보고서에 따르면 5공 시절인 1983년 이후 실제 간첩이 남파된 사건은 단 1건도 없었으나 국보법에 근거를 두고 조작된 것으로 보이는 간첩의혹 사건은 매년 15건(83년), 14건(84년), 26건(85년), 11건(86년) 등으로 끊이지 않았다.

또 △새벽에 ‘다방에서 얘기나 하자’며 연행(92년 손병선씨 사건) △대문을 열자 바로 폭행하며 연행(90년 송갑석씨 사건) △길거리에서 강제연행(94년 노래극단 ‘희망새’ 사건) 등 불법적인 체포 검거가 다반사로 자행됐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와 관련해 남민전 사건(79년), 미스유니버스대회 폭파 음모 사건(81년), 서노련 사건(86년) 등의 고문행위 역시 국보법이 피의자의 인권침해를 광범위하게 조장한 사례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의 결론=보고서의 핵심은 국보법이 법률상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정권의 이익을 대변하고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제반 권리를 침해하는 법’으로 기능했다는 것.

국보법은 1948년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형법 및 민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한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58년 이승만 정권 당시 ‘인심흑란죄’ 규정을 추가한 2·4파동 △1961년 박정희 정권의 계엄하 ‘반공법’ 제정 △1980년 전두환 정권의 국회 날치기 통과에 따른 국보법 개악 등을 통해 문제점을 드러냈다.

보고서는 또 “국보법은 경찰, 검찰,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등 법적용기관에서 불법구금과 고문 등 인권침해를 폭넓게 자행하는 근거로 이용됐다”고 밝혔다.

▽보고서 발표 이후=인권위는 이 보고서를 국회 및 법무부 등 관련 기관에 배포할 예정이다. 인권위의 남규선 공보담당관은 “재야진영에서 부분적으로 다뤄진 적은 있지만 국가기관이 이처럼 본격적으로 국보법에 대해 폭넓게 조사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민가협의 송소연 총무는 “국가기관인 인권위의 검증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번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르면 이달 내로 전원위원회의 토의를 거쳐 다음 달쯤 국보법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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