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국가보안법 관련 인권실태’ 보고

  • 입력 2004년 6월 2일 16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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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金昌國)가 2일 국가기관으로서는 최초로 국가보안법에 대한 '인권실태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보안법 적용상에 나타난 인권실태'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인권위가 지난해부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 의뢰해 만든 국보법 관련 사안들을 총망라한 것. 인권위는 "공식입장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제정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보법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를 모두 담고 있어 국보법 존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주요 내용=보고서의 핵심은 국보법이 법률상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는데 목적을 뒀음에도 실제로는 '정권의 이익을 대변하고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제반 권리를 침해하는' 법으로 기능했다는 것.

보고서에 따르면 국보법은 1948년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형법 및 민법이 제정되기도 이전에 한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후 60~80년대를 거치면서 △국회 날치기 통과 등 비정상적인 개정 △정권 연장 의도 및 초헌법적 정치적 상황 고려 △불명확한 문구로 광범위한 법적용 등으로 개악됐다.

또 경찰, 검찰,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등 대부분의 법적용기관에서 수사기관들의 '실적 올리기'와 사법기관의 방조에 따라 국보법으로 인한 불법 인권침해가 폭넓게 자행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특히 △국정원의 비공개 원칙으로 인해 외부의 감시 및 견제가 불가능한 점 △국보법 관련 경찰의 특진, 포상금 제도로 인한 체포·구속 남용 △검찰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공안 논리적 기능 등이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혔다.

한편 국보법의 특별형사소송절차 규정 역시 수사기관의 편의를 위해 헌법상 보장된 피의자의 인권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발표 이후=인권위는 이 보고서를 국회 및 법무부 등 관련 기관에 모두 배포할 예정. 인권위의 남규선(南奎先) 공보담당관은 "재야진영에서 부분적으로 다뤄진 적은 있지만 국가기관이 이처럼 본격적으로 국보법에 대해 폭넓게 조사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보고서가 최근의 국보법 논란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던 민가협의 송소연 총무는 "국가기관인 인권위의 검증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한편 인권위는 이번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르면 이달 내로 전원위원회의 토의를 거쳐 다음달쯤에 국보법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인권위 인권정책국의 정영선(정영선) 사무관은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내용은 없지만 인권위가 장기간에 걸쳐 국보법에 주목하고 조사를 벌여온 만큼 조만간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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