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코앞 高3교실 두 풍경…강남 "특강 들어라" 단축수업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8시 19분


코멘트
지난달 29일 낮 12시반경 단축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고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친 3학년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낮 12시반경 단축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고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친 3학년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5일)을 코앞에 둔 요즘 서울 강남지역과 그 외 지역 고교 3학년 교실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돼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강남의 고교들은 단축수업으로 오전에 수업을 끝내 오후만 되면 교실이 텅 비어버리는 반면, 다른 지역은 밤늦게까지 학생들로 차 있다. 소위 사교육 1번지로 통하는 서울 강남의 경우 학교측이 스스로 공교육을 포기하고 사교육에 학생을 내맡기는 탓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텅 빈 교실=수능시험을 꼭 1주일 남긴 지난달 29일 낮 12시20분경 서울 강남구 H고.

교문을 통해 평상복 차림의 3학년 학생 수백명이 쏟아져 나왔다. 고3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학교측은 “수능 막바지 준비를 위해 일찍 하교시켜 달라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요구가 빗발쳐 수능 열흘 전부터 오전수업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보 취재팀이 확인한 서울 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 등 강남지역의 9개 고교 중 공립 1곳을 뺀 모든 고교들이 이번 주 월요일부터 고3 수업을 단축했다.

일부 학교는 개인과외 또는 사설학원의 ‘파이널 코스’ 수강을 이유로 출석 체크만 하면 집으로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고 교사들과 학생들은 전했다.

곧 이어 대치동 등 강남 학원 밀집가에는 일찍 하교한 고3생들이 몰려들면서 활력이 넘쳤다.

이날 오후 2시경. 강남구 대치동의 O학원에는 고3생들이 강의실마다 들어차 지리 국사 등 암기과목에 대한 핵심정리를 듣고 있었다.

한 학생은 “점심시간 이후 학원에서 해주는 보충강의를 듣고, 저녁시간에 정규 강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대형 학원들은 이런 특수(特需)를 잡기 위해 ‘특강’을 개설했다. 강남의 H학원은 이번 주 토요일∼다음주 월요일 3일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언어 수리 사회 등 수능 6과목을 가르치는 ‘막판 3일 30점 올리기 강좌’를 1인당 30만원에 개설해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북적이는 교실=역시 지난달 29일 오후 2시반경 서울 서대문구 E여고.

지난달 29일 밤 10시경 서울 강북의 한 여고에서 3학년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3학년 교실은 모두 정규수업 중이었다. 화학수업 중인 한 교실은 이 과목을 선택한 10여명의 학생만 수업에 참가한 채 나머지 학생들은 자습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오후 4시까지 정규수업을 실시한 뒤 희망 학생에 한해 오후 10시까지 자율학습에 들어간다. 한 학생은 “집에 가면 공부가 안 되고 학원도 시원찮아 남아서 공부한다”며 “4명 중 1명꼴로 늦게까지 자습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지역과 지방도시 7개 고교를 확인한 결과 고3생들은 오후 4시 안팎까지 정상 수업을 하고 학교별로 20∼100%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자율학습을 한다.

부산 Y고의 진학담당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늦게까지 붙잡아두기를 학부모들이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엇갈리는 주장=이에 대해 강남지역 교사들은 “단축수업은 학생들의 더 나은 수능 마무리를 위해 학교가 배려하는 것일 뿐”이라며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의’의 송환웅(宋奐雄) 부회장은 “사교육에 의존하는 강남지역 고교들은 2학기 초반부터 정상수업이 힘든 곳이 많다”면서 “단축수업은 학교가 앞장서서 사교육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학한(金鶴漢) 기획국장은 “학교측이 자진해서 공교육을 포기하고 사교육에 수험 마무리를 전가하는 이런 일들은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단축수업은 교장의 재량권을 벗어나는 명백한 편법인 만큼 조사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