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부비판 퇴임강연' 화제 서성 前대법관

  • 입력 2003년 9월 23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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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한기자
전영한기자
9일 퇴임한 서성(徐晟) 전 대법관은 퇴임 강연에서 대법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해 화제가 됐다.

서 전 대법관은 강연 내용이 보도된 후 지인(知人)들에게서 “할 말을 했다”는 격려전화와 함께 “그런 말을 해도 괜찮겠느냐”는 ‘걱정’의 전화도 받았다고 한다.

서 전 대법관을 2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나 퇴임 강연과 사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먼저 퇴임 강연에서 “법조인 대통령의 탄생으로 가졌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을 겨냥한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 말을 해도 될지 고민했습니다. 대법관이 말하기에는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나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 실망의 요체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대법관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 대통령이나 현 정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말을 삼갔다.

그가 말하지 않은 실망의 요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가 2001년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1988년 당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을 약속하고 신고대상과 기간 장소 등을 공고하는 절차까지 밟았으나 이를 제대로 이행치 않았다.

서 전 대법관의 판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약속 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책임질 위치에 있는 공직자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해야죠. 당시 정부는 ‘정치적 발언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이 없고, 손해배상 청구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으나 나는 대통령의 발언이 ‘법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신뢰’라고 생각했습니다.”

청와대와 일부 언론간의 갈등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퇴임 후 청조근정훈장을 받기 위해 15일 청와대에 갔습니다. 노 대통령과 15분 정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언론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말씀하십디다.” 그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했다.

법관 시절 법원행정처의 요직을 맡아 나름대로 사법개혁을 주도했던 그는 사법개혁 문제를 거론하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지난번 대법관 임명 파문 때 당시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세 사람은 능력이나 성품면에서 모두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마치 반개혁 인사로 비쳐 안타까웠습니다. 모든 개혁에는 대의와 명분이 있어야 하지요. 무조건 윗사람이 나가는 게 개혁은 아니니까요.”

―사법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돼야 할까요.

“사법부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관’이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해야 하고 국민에게 친절하고 편리를 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하나로 통합해 다양한 직역의 사람들로 최고법원을 구성해 법률심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3심을 원하는 국민을 위해 사실문제를 다루는 전담 재판부를 별도로 마련할 수도 있겠지요.”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혼선이 있는데….

“입법부가 정리해 줘야 합니다. 남북 교류도 활발해졌는데 법은 그대로 있으니 국민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이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판결한 것에 대해 일부 신랄한 비판이 있었는데, 법원 입장에서는 이럴 때 가장 난감했습니다.”

서 전 대법관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와 가까운 사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정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도 적지 않다.

“이 전 총재가 고등학교, 대학교, 법관 선배이기 때문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로 어떤 정치적 영향도 준 적이 없습니다. 가까운 선배이기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이 전 총재가 낙선했을 때 아쉬웠지만, 친한 사람이 당선되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요.”

―후배 법관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현직에 있을 때 처신을 바로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항상 노력했습니다. 법관은 항상 용기를 가지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자제하고 남을 위해 베풀며 ‘적극적’ 청렴을 실천해야 합니다.”

양기대기자 kee@donga.com

▼서성 前대법관은…▼

△1942년 충남 논산 출신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사시 1회 수석 합격 △서울 민·형사지법 부장판사 △광주·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차장 △1997∼2003년 대법관 △부인 임양자씨와의 사이에 1남 1녀 △취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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