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물난리… ‘되풀이 수해’ 주민들, "말만 철저대비…"

  • 입력 2003년 9월 15일 18시 25분


코멘트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수해를 입은 강원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 주민들이 지난해 수해 이후 만들어진 가교 위에 쌓인 쓰레기 더미를 지나고 있다. 매년 거듭해 수해를 입는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다. -삼척=변영욱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수해를 입은 강원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 주민들이 지난해 수해 이후 만들어진 가교 위에 쌓인 쓰레기 더미를 지나고 있다. 매년 거듭해 수해를 입는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다. -삼척=변영욱기자
경남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월현천 제방 일부가 붕괴되면서 인근 농경지 110ha가 ‘물바다’가 됐다.

“지난해에도 제방이 터져서 논이 잠겼던 곳인기라. 이런 일이 또 일어나는 게 말이 되나 말이다.”

15일 1년 농사를 또 망친 한 농민이 물에 잠긴 논을 바라보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처럼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겪었던 수해가 올해도 거짓말처럼 되풀이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해 태풍 ‘루사’ 이후 완벽한 재해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여기저기서 공사를 벌였던 당국은 도대체 뭘 한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복되는 재해=수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살았던 강원 태백시 철암동 고산지대 주민들. 그러나 지난해 태풍 ‘루사’로 동네 전체가 물에 잠긴 데 이어 올해 똑같은 물난리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주민들은 3년 전 설치된 철암천 복개시설물 때문에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피해가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물난리 이후 줄기차게 시청에 복개시설물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시가 꿈쩍도 안했다”며 “소 잃은 뒤에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당국을 어떻게 믿느냐”고 항변했다.

태백시는 주민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치자 15일에서야 “앞으로 주민의견을 수렴해 복개시설물 철거 여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어정쩡한 ‘사후약방문’을 내놓았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앞 35번 국도는 벌써 5년째 비만 오면 수백m씩 도로가 유실되는 곳. 올해에도 50∼100m씩 모두 3곳이 유실됐다. 안동시는 “국도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수할 수 없다”며 책임을 중앙정부에 돌렸다.

주민 김모씨(45)는 “매년 땜질 보수하는 돈을 합치면 새로운 도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기 부천시에서도 이번 태풍에 앞서 지난달 24, 25일 내린 집중호우로 530여가구가 침수됐다. 이 지역은 2001년 7월에도 침수됐던 곳으로 시는 이후 곳곳에 하수역류방지장치를 설치하는 등 수방사업을 벌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전문가들은 이처럼 비슷한 수해가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조 부족, 관공서의 비전문적인 수해방지 대책, 공무원의 무사안일 등을 꼽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남원(金南元) 수석연구원은 “지방의 소하천 지역처럼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모두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정부는 ‘작은 지역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하고, 지자체는 예산타령만 하고 있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며 “일단 어느 지역이 큰 피해를 보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유기적으로 협조해 상시적인 보완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비전문적인 수해 복구도 문제라는 지적. 환경운동연합 염형철(廉亨喆) 국장은 “피해지역의 자연적 특성을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복구사업에 나서기 때문에 수해복구사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강원 영동 지역에서는 지난해 ‘루사’ 피해 이후 수해를 방지한다고 인공구조물들을 여기저기 무분별하게 설치, 하천을 더 좁게 만들어 올해 더욱 큰 피해를 본 지역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태백=경인수기자 sunghyun@donga.com

안동=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