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률 4% 시대]국민소득 2만달러 꿈으로 끝나나

  • 입력 2003년 9월 4일 17시 46분


코멘트
한국은행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사실상 4%대로 낮추기로 한 것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구조로 진입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그만큼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노사 분규가 심해져도, 빚으로 과소비를 해도 경제는 발전한다’는 ‘성장 신화(神話)’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특히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이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고 한국 경제 전반의 경쟁력 하락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다만 이번 재산정 작업이 한국 경제의 병인(病因)을 찾고 그 치료법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잔매’에 무너진 경제의 기초 체력=잠재성장률은 한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총체적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표의 하락은 한국 경제가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 노사분규, 정부의 정책 실패 등으로 기초 체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선진국에 비해 설비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최근 들어선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투자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의 설비투자 부진은 심각하다.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7월중 경제활동 동향’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지난해 7월에 비해 13.1%나 줄었다. 이 같은 감소 폭은 월간 기준으로 2001년 8월(―17.9%)이후 2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노사 분규도 잠재성장력을 갉아 먹었다. 박승(朴昇) 한은 총재는 최근 “하반기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금처럼 노사분규가 지속되면 경기 회복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고령화와 출산율 하락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중장기적 노동력 공급마저 불안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2000년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를 넘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또 올해 여성 1인당 출산율은 1.17명으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으며 2023년 이후에는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신용불량자와 가계 부실이 갈수록 늘면서 금융위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과 핵심 고급 인력의 ‘해외 탈출’도 가속화하는 추세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2만달러 시대’=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경제가 연평균 4.7%씩 성장하면서 물가상승률을 2.3%로 유지하면 2012년쯤 2만달러에 진입한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이 4%대로 추락하면 2만달러 시대의 도래는 이보다 훨씬 늦어질 수밖에 없다.

강선구(姜善求) LG경제연구원 경제분석팀 연구위원은 “잠재성장률을 4%대로 낮춰 잡았을 때 연평균 3.5% 정도의 경제 성장을 한다고 가정하면 2020년은 돼야 2만달러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잠재성장률은 호황과 불황을 되풀이하는 단기적 경기변동의 결과가 아니다.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는 △자본 축적률 △취업자 수 △취업자의 학력 △생산성 △기술혁신(이노베이션) 등이 꼽힌다.

이와 함께 정부의 경쟁력과 경제정책기조, 개별 기업의 경쟁력, 노사관계, 기업을 보는 사회 분위기 등이 모두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기가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잠재성장력 확충에 힘을 모아야 한다=최근 경제가 계속 어려워져 왔지만 정부는 자주 낙관론을 펴왔다.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는 최근 “경기가 바닥을 다지는 시기를 지나 회복을 보이고 있어 내년에는 5%대의 잠재성장률 회복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의 잠재성장률 하향 조정 움직임은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근거 약한 낙관론’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거시경제팀장은 “잠재성장률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이라고 지적했다. 기업하는 사람은 기업하려는 의욕을, 일하는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려는 의욕을 만들어주는 사회 시스템과 분위기가 시급하다는 뜻이다.

조 팀장은 “경제를 하려는 의욕을 부추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하면 어떤 보상이 올지 사회 구성원들이 확신할 수 있도록 법과 질서를 제대로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최근처럼 불확실성이 심화하면 이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기업의 투자심리 회복과 선진적 노사관계 확립 등을 통해 경제 도약의 기초를 만드는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