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대신 개인별 신분기록 재혼땐 자녀姓 바꿀수 있다

  • 입력 2003년 8월 22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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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호주 중심의 가족단위 호적을 없애고 국민 개개인이 신분을 등록하는 ‘개인별 신분등록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다음주 중 입법예고된다.

법무부는 21일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족법 개정 특별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민법 개정안을 확정하고 이르면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개정안은 국회 통과 이후 2년 뒤 시행하도록 규정돼 있어 이르면 2006년부터 새 법이 시행될 전망이지만 유림 등의 반발이 적지 않아 국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혼 또는 재혼 가정의 자녀들은 가정법원의 결정에 따라 친아버지의 성 대신 새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성으로 자신의 성을 바꿀 수 있다.

또 자녀의 성과 관련해서는 현행처럼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부가 합의하면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을 신설했다. 이 경우 형제자매는 같은 성과 본을 따라야 한다.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도입되면 개인의 출생 혼인 사망 입양 등 신분 변동사항과 함께 부모 배우자 자녀 등의 신상은 기록되지만 형제자매의 신상은 제외된다.

법무부는 개인별 신분등록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민법뿐만 아니라 호적법도 개정해야 하는 점을 감안해 호적을 관장하는 대법원에 법 개정을 권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민법 개정안에는 현행 민법 778조와 779조에 규정된 호주 및 가족의 범위가 삭제돼 있어 개정안이 확정 시행되면 ‘호주’와 ‘가족’이라는 개념이 민법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호주제 관련 민법 개정안 주요 내용
구분현행개정안
여성 및 자녀 호적 남편 또는 아버지 호적에 올라감 호주 없어지고 개인별 신분등록 기록 가짐
호주 승계 아들, 딸, 며느리 순 없어짐
자녀의 성(姓)아버지 성을 따름원칙적으로 아버지 성 따르지만 부부가 합의하면 어머니 성 따를 수 있음
재혼 여성의 자녀 새아버지, 친아버지 등의 동의 얻어 새아버지 호적에 올릴 수 있음. 성과 본은 친아버지 따름개별 신분등록 기록 가짐. 가정법원의 판단에 따라 새아버지 또는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음
이혼 여성의 자녀어머니가 키워도 아버지 호적에 남아 있음가정법원의 판단에 따라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음. 개인별 신분등록 기록 가짐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호주제 폐지 의미-반응▼

1950년대 민법 제정 당시부터 찬반 논란이 계속돼온 호주제 폐지 문제가 법무부의 민법 개정안 잠정 확정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남녀간의 불평등이 해소되고 다양한 가족형태가 수용될 수 있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50여년간 지속돼 온 ‘가족’의 정체성에 상당한 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호주제 폐지의 핵심은 남성인 가장이 가족을 이끈다는 전통 가족의 패러다임에서 부부 중심의 양성평등 가족으로 전환된다는 점.

호주제가 없어지면 집안의 ‘기둥’에 비유되는 ‘가장’의 개념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개별 가족 구성원들은 법률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다.

이 경우 어린 아들, 손자 등이 어머니나 할머니를 대신해 호주가 되고 가장으로서 집안을 이끌어 간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사라지게 된다.

▽호주제 운동의 배경=1989년 제3차 가족법 개정 당시 호주제 승계 순위를 규정한 조항을 제외하고는 재산상속 등에 관한 호주의 권리와 의무, 역할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러나 여성계는 남성 위주의 호주 승계제도가 가부장적 사회의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여성계는 재혼 가정 및 이혼 가정의 자녀가 생부의 성만을 따를 수 있는 현행법에 대해 강하게 반발해왔다. 그동안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녀는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호적등본 및 주민등록등본상 재혼 가정의 자녀라는 점이 노출됐다.

또 이혼한 어머니가 자녀에 대해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갖고 있는 경우에도 자녀의 호적은 아버지 호적에 올라있었다. ‘1인1적제’를 시행하면 자녀가 개별기록을 갖게 되기 때문에 호주를 적는 일이 사라진다.

▽호주제 폐지운동 경과=지금까지 가족법 개정은 1958년, 1977년, 1989년 세 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이 때마다 동성동본간 결혼과 호주제 폐지 문제가 쟁점에 올랐다. 동성동본간의 결혼금지 조항은 1997년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일단락됐지만 호주제 폐지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가족법 개정을 위해 힘써오던 여성계가 호주제 폐지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99년 한국여성단체연합회(여연)가 ‘호주제 폐지 운동본부’를 결성하면서부터. 1999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호주제 폐지에 대한 권고사항을 결의한 것에 힘을 얻은 여성계는 2000년 113개 단체로 구성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발족했다. 이후 2000년 11월과 2002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호주제에 대한 위헌심판제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각계 반응과 전망=호주제 폐지 운동을 펼쳐온 여성계에서는 개인별 신분등록제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경숙(李景淑) 여연 공동대표는 “헌법에 명시된 양성평등 사상에 부합되는 개정안이 마련돼 기쁘다”며 “우리 사회가 전근대성을 벗을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림측에서는 “500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민족의 역사를 붕괴시키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씨족총연합회 백진우(白鎭禹) 총재는 “호주제에 문제가 있다면 보완을 하면 되지 전면 폐지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호주제 폐지는 가족 질서 붕괴와 조상과의 단절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한편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이르면 2006년부터 시행되지만 유림측의 반발이 심하고 가부장제 문화가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 상당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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