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금성’ 신분 드러나 사업 피해” 국가상대 일부 승소

  • 입력 2003년 6월 27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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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이른바 ‘북풍사건’의 핵심인물인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공작원 ‘흑금성’을 고용했다가 피해를 본 대북 민간기업이 소송 끝에 국가에서 위자료를 받게 됐다.

서울고법 민사5부(양동관·梁東冠 부장판사)는 대북 광고기획사인 아자커뮤니케이션과 이 회사 전 대표이사 박기영씨(46)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깨고 “피고는 6억5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95년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취업시킨 박채서씨(49)의 암호명. 육군 3사관학교 출신인 박씨는 군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다 93년 예비역 소령으로 전역한 뒤 94년 안기부에 들어가 대북 공작원으로 활동했다. 박씨는 아자에 전무로 위장취업했고 이때부터 아자측이 추진해온 ‘북한을 무대로 한 남한기업의 광고제작’ 사업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아자측은 북한 당국과 금강산 묘향산 등지에서 TV광고를 촬영하는 사업의 독점권을 따냈고, 국내에서는 97∼98년 국내 유명 전자회사와 광고촬영 가계약을 맺는 등 여러 건의 대북 광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98년 3월 안기부 전 해외실장 이대성씨가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기밀정보를 폭로하면서 ‘흑금성’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 전 실장은 대선 기간인 97년 12월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의 지시를 받아 부하들로 하여금 “김대중(金大中) 후보가 71년부터 북한에서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허위내용의 기자회견을 갖도록 해 이른바 ‘북풍’(北風)을 몰고 왔다.

그러나 이듬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 부하직원들이 잇따라 구속되자 여권 압박용으로 극비파일을 공개한 것. 이 파일에는 당시 새정치 국민회의 소속 정치인들이 북한과 접촉한 내용, 북한 정보가 선거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등이 상세히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정보를 수집한 공작원 ‘흑금성’이 언급된 것. 언론을 통해 ‘흑금성’이 박씨라는 사실까지 보도되자 아자측의 대북사업이 북측의 반발로 전면 중단됐다.

이에 아자측은 “사업이 중단된 책임이 흑금성을 위장 취업시킨 안기부에 있다”며 98년 7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2000년 5월 1심에서는 “안기부가 고의로 사업에 피해를 끼치려 한 것은 아니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흑금성이란▼

안기부가 95년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취업시킨 박채서씨(49)의 암호명.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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