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부총리 '不法파업도 실체인정' 발언 파문

  • 입력 2003년 6월 23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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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불법 파업에 관한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23일 기자회견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김 경제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불법 파업이라도 대화와 타협이 ‘선행절차’이며 불법 파업 주동자라도 대화의 실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재계 등에서는 노동계의 이른바 ‘하투(夏鬪·여름투쟁) 등 파업 일정이 줄줄이 예고된 가운데 나온 그의 말이 자칫 불법 파업을 조장할 가능성까지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부총리 발언 요지와 배경=김 부총리는 불법 파업 주동자 처리와 관련해서는 “파업으로 가기까지 강온론이 혼재했던 상황, 문제를 풀기 위한 과정, 정상화에 대한 협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사법당국이 위법성의 경중을 판단한 뒤 처리할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파업 지도부가 조합원들에게 눈물로 협상 타결을 호소했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관용처리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화 실체 인정 등에 관한 그의 발언은 충분한 논리를 갖고 준비된 것이라기보다 이번 파업에서 정부의 역할이 정당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실체 인정’은 “수배자와 대화 탁자에 마주 앉는 것이 법과 원칙이냐”, ‘선행절차’는 “불법 파업이 줄을 이어도 계속 대화로 해결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였다.

특히 김 부총리가 조흥은행 파업 타결에 관한 언론 보도와 관련, 매우 격앙된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말실수’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경제단체 및 전문가 시각=경제단체와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김 부총리의 발언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경제팀 수장(首長)’이 해선 안 될 말이라고 지적했다.

명지대 조동근(趙東根·경제학) 교수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은 경제 주체들이 판단을 하는 데 중요한 신호가 된다”면서 “파업이 줄줄이 예고된 상황에서 김 부총리가 뭘 기대하고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김 부총리가 밤을 새워가며 파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하지만 국민 여론이 반영된 신문 보도에 지나치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임원은 “불법 파업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대화와 양보로 해결하려한다면 모든 이익단체들이 빨리 일을 벌여 하나라도 더 얻어내자고 나설 것”이라고 걱정했다.

또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임원은 “미국이 일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테러범과 협상을 하지 않는 것은 협상에 순응하면 선례를 남기기 때문”이라면서 “불법 파업에 대한 경제수장의 인식이 그렇다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설사 정부가 상황의 불가피성 때문에 타협에 나서더라도 물밑에서 타협해야 한다”며 “불법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조흥은행 불법 파업의 책임자들에 대해 반드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총리의 이번 발언은 이날 최종찬(崔鍾璨) 건설교통부 장관이 “28일로 예정된 철도노조 파업은 불법이며 정부로서는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과 ‘엇박자’라는 비판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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