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폐허로 변한 '일편단심' 옛터

  • 입력 2003년 6월 22일 2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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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가 ‘선현들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지킨다’는 취지로 벌이는 ‘이달의 문화인물’ 사업이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7∼1392)선생의 경우.

포은선생의 출생지인 경북 영천시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조선 명종 8년(1553년)에 창건된 임고서원(臨皐書院·경북도기념물 62호)과 그의 지극한 효성을 엿볼 수 있는 ‘효자리(孝子里·경북도 유형문화재 272호)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21일 찾은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임고서원은 도저히 문화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에 가까웠다. 포은 선생의 위폐를 모신 곳인 데도 ‘유령의 집’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마당은 발을 내딛기 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잡초로 뒤덮여 있고 건물은 여기저기 부서진 채 방치돼 있었다. 벽의 흙은 떨어져 나간 상태였고 처마도 쳐져 있어 안으로 들어가면 금방 무너질 듯 했다.

문광부든 관할 지방자치단체든 평소 전혀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증거인 셈이다. 영천시도 ‘충의의 고장’이라는 표현을 지역상징으로 내세울 뿐 정작 포은선생의 유적관리에는 소홀하다.

주민들은 “무서워서 주위에 가기도 겁이 난다”며 “보물급인 선생의 영정과 서적을 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해서 이렇게 방치해도 되느냐”고 비판했다.

서원 옆에 사는 한 주민은 “매년 2월과 8월 제사를 지낼 뿐 다른 관리는 하지 않는다”며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고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임고서원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임고면 우항마을은 포은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효자리’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 부친상을 당한 포은 선생이 묘소에서 3년 상을 치른 데 이어 10년 뒤 모친상 때에도 다시 묘소에서 3년 상을 치르자 이를 안 조정에서 공양왕 원년(1389)에 이 비석을 세웠다.

그러나 들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비각(碑閣) 안은 잡초가 무성했다. 모내기를 하던 주민들은 “하도 보기에 흉해 여러 번 당국에 정비를 요청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 박기환(朴基煥·63)씨는 “포은선생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는 문화재인데 도대체 누가 관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문광부는 포은 선생이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그의 삶을 널리 알린다며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포스터 2만장, 소책자 2만 5000부를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고 20일 영천시에서 포은 선생의 학문과 인품을 기리는 학술행사를 열었다.

지역 주민들은 “홍보물을 만드는 돈을 아껴 쓰러져가는 임고서원을 바로 세우고 유적 주변에 무성한 잡초 뽑는 일부터 해라”며 혀를 찼다.

영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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