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진영/물류대란 부른 '경보 불감증'

  • 입력 2003년 5월 11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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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 하다가 이제야 나타나는 겁니까.”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 포항지부 소속 화물차 운전사들의 운행 거부와 물류수송 봉쇄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6일 기자가 포항에 도착했을 때 운전사들에게서 들은 첫마디다.

처음에는 이들이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언론을 책망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물류대란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많은 운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말이 단순히 언론에 대한 불만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 말 속에는 다단계 알선으로 비롯된 물류수송의 구조적인 모순이 20년 이상 누적돼 왔고, 이 때문에 화물차 운전사들이 겪는 고통을 수도 없이 호소해 왔지만 그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원망이 섞여 있었다.

화물연대의 파업에 앞서 전국운송하역노조 위원장이 건설교통부 장관을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고 화물연대 소속 운전사들은 3월 31일과 4월 30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각각 4000여명과 7000여명이 모여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입차주들로 구성된 화물연대가 지난해 10월 결성된 이후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단체행동 가능성을 여러 차례 예고했지만 아무도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실질적인 대화 상대인 운송업체들마저도 사용자가 아니라며 대화를 거부하다 하역장이 봉쇄돼 물류수송에 차질이 빚어지자 그때서야 마지못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번 포항지부의 파업과 협상 타결에 대해 ‘물리력을 앞세운 집단행동이면 무엇이든 해결된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적 지적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운전사들이 집단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1차적인 원인은 평소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나 사용자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있었다는 화물연대의 주장에도 수긍할 만한 대목이 있다.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각종 대형사고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갖게 되는 공통적인 생각은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도 ‘안전 불감증’ 때문에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포항지역에서만 1100억원의 손실을 초래한 이번 물류대란에도 사전 위험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묵살한 ‘불감증’이 한몫 했다.

포항의 조업거부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전국 각지에서 후속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수출 차질 등 값비싼 교훈을 치르고 난 뒤에야 사후약방문식의 대책이 마련되는 후진성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황진영 사회1부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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