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김선원씨, 동양大서 '여류明時' 강의

  • 입력 2003년 4월 18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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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김선원씨가 동양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과 교정에서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영주=이권효기자
서예가 김선원씨가 동양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과 교정에서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영주=이권효기자
서예가 김선원(金善源·58·서울 종로구 평창동)씨는 매주 목요일 오전 9시면 서울 청량리역에서 경북 영주시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영주시 풍기읍에 있는 동양대(총장 최성해·崔成海)에서 서예 강의를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첫 사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풍기 소수서원(紹修書院)의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을 가진 동양대는 2001년 초 김씨에게 ‘글씨’의 깊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김씨는 ‘선비의 고장’인 풍기에서 한국의 예(禮)를 세우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제의를 수락해 초빙교수 자격으로 그해 신학기부터 강의를 해오고 있다. 더구나 이 지역이 아직도 한국적 예의를 중시하는 고장이라는 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그는 이곳 식당에서 주인과 맞절로 예를 나누는 것을 여러 번 체험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학기에 수강생 1100명을 대상으로 ‘조선시대 여류 명시’를 강의하고 있다. 17일 오후 강의를 마친 김 교수는 수업에 참여한 학생 70여명의 공책에 일일이 ‘효(孝)’자를 써주었다. 부모와 어른을 존중하고 아랫사람을 아끼는 마음가짐만 있어도 ‘선비’라는 게 그의 생각.

경영관광정보학부 1학년 이주희(李珠姬·20)씨는 “그동안 한문이 무척 낯설었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꼭 알아야 할 분야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 주융더(朱永德·20)는 “중국에서는 간자체를 사용했는데 뜻밖에 한자의 원형을 접할 수 있어 반가웠다”며 “오늘 공부한 신사임당의 시(詩)는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충남 청양군에서 태어난 김씨가 서예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광산 김씨 종가의 종손으로 5세부터 한학을 시작해 지금까지 한문과 함께 살아온 삶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요즘도 날마다 새벽까지 글을 읽고 외우고 씁니다. 논어(論語)만 해도 읽고 또 읽으면 그때마다 뜻이 새로워져요.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새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닐까요.”

그는 중국의 ‘강희자전’에 수록된 한자 20만자를 완벽하게 암기하는 것은 물론 ‘논어’ ‘맹자’ ‘시경’ ‘도덕경’ ‘장자’ ‘주역’ 등 중국과 한국의 고전을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외운다.

그러면서 글씨에 대한 애착도 갖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 “글자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서예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예전문가가 되려면 서예체를 정식으로 배워야겠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정직하게 쓰면 됩니다. 글씨를 못 쓰는 사람치고 정성껏 글을 쓰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글씨는 기교가 아니라 인품인 셈이죠.”

서울 인사동에서 30년째 ‘대동서학회’를 운영하면서 제자 50여명과 공부를 하고 있는 김씨는 “요즘 대학과 대학생들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며 “고전을 가까이 하면서 대학(大學)의 뜻인 ‘큰 배움’에 다가가는 것이 영원한 가치”라고 말했다.

영주=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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