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많아 상속 포기" 세금체납자 유족 채무 피하기 잇달아

  • 입력 2003년 3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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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의 세금을 체납한 사망자의 유족이 상속을 포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때는 수백억, 수천억원대의 재력가였지만 사업 실패 등으로 그보다 훨씬 많은 빚을 지는 바람에 유족으로서는 상속을 받아도 남는 게 없기 때문.

이에 따라 밀린 세금을 받아내야 하는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체납 시세(市稅) 전문 징수조직인 ‘38세금기동팀’은 최근 고모씨(여) 소유의 강남구 개포동 임야를 경매에 부쳐 국세로 돌아가는 몫을 제하고 시세 미납액으로 724만원을 받았다.

고씨의 부친은 1970년대 말∼80년대 초반 국내 주식거래액의 30%가 그의 계좌를 통했을 정도로 증권가의 ‘큰손’이었다. 그러나 말년에 시세조종 시비에 휘말리고 주가 폭락으로 큰 손해를 본 끝에 거액의 빚과 29억원의 지방세, 178억원(1998년 말 현재)의 국세를 유족에게 짐으로 남긴 채 1999년 사망했다.

오랫동안 미국에 머무른 탓에 이 같은 사정에 어두운 고씨를 뺀 다른 유족은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

시는 국세청과 함께 개포동 임야 외에 강남구 신사동, 노원구 상계동 등에 흩어져 있는 고씨의 상속재산을 공매해 체납세금을 최대한 추징할 예정이다.

한때 지방대 총장을 지냈으며 시멘트업과 신문업에 진출해 엄청난 부와 함께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했던 박모씨(99년 사망)의 유족도 비슷한 경우. 고령에 중풍이 겹쳐 입원 중인 부인(79) 외에 11명의 법정 상속인들은 박씨가 남긴 채무를 피하기 위해 그가 사망한 지 두 달 만에 법원판결을 받아 재산상속을 포기했다.

시는 부인이 체납한 주민세 9600여만원을 받아내기 위해 박씨 명의로 돼 있는 종로구 필운동 건물과 땅(시가 20여억원 추정)의 소유권을 지난달 부인에게 강제로 등기(대위등기)시켜 압류한 뒤 자산관리공사에 공매를 의뢰했다.

이 물건은 95년 채권자인 외환은행이 가압류한 상태이지만 공매시 조세채권이 가압류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시는 체납세액을 전액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용근(李用根) 시 38세금기동팀장은 “체납 처분을 회피하기 위해 상속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 밖에도 꽤 많다”고 말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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