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새단장’ 여기 치이고 저기 막히고…

  • 입력 2003년 3월 24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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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옛 양반촌인 북촌(北村)은 제대로 가꿔지고 있는가. 서울시의 ‘북촌가꾸기 사업’에 대해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지적과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2001년 시작된 사업의 진행이 더딘 데다 일부 사업의 방향이 주민의 뜻과 부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딘 사업 진행

▽더딘 사업 진행=서울시는 2000년 11월 주민 설명 자료에서 2004년까지 한옥 188채를 매입해 보수한 뒤 거주를 원하는 시민에게 분양 또는 임대하거나 공방, 전시관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단계에서 매입 대상이 36채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가 매입한 한옥은 수정 계획에도 크게 못 미치는 7채(2001년 도시개발공사가 7채 매입). 그나마 이 중 5채는 2001년 예산의 집행 시기를 늦춰 매입한 것이고 2002년 예산으로 매입한 집은 2채에 불과하다. 북촌가꾸기 실무 부서인 한옥 보존팀 관계자는 “한옥 매입 예산이 6억5900만원이어서 현실적으로도 2채 이상 사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반면 예산 배정 관계자는 “전년 매입 실적이 부진해 예산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런 매입 부진은 서울시가 자초한 셈. 매입 계획이 알려지면서 이 일대 집값이 올라갔고 서울시는 “꼭 필요한 집만 매입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꿔 매입 대상이 36채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감정가 매입’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주민들은 “감정가가 시세와 차이가 큰데 서울시가 이 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서울시는 또 한옥을 등록하는 주민에게 최대 3000만원까지 외관 보수 비용을 지원해 주민 스스로 한옥의 보존을 유도한다는 ‘한옥등록제’도 추진했지만 지난달까지 등록된 한옥은 북촌 일대 한옥 924채의 26.2%인 242채뿐이다. 이로 인해 당초 2004년까지 완료하기로 됐던 북촌가꾸기 사업은 2006년까지로 기간이 연장됐다.

▽거주 지역인가, 관광 자원인가

▽거주 지역인가, 관광 자원인가=북촌가꾸기의 방향 설정도 논란의 대상. 지난해까지 서울시가 매입한 한옥 중 6채는 현재 보수 또는 재건축을 위한 설계 작업 중이고 2채는 이미 보수가 완료돼 각각 게스트하우스와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이 8채 중 ‘순수 주거’ 목적의 집은 없다. 공방이나 게스트하우스, 전시관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렇듯 북촌을 문화자원, 관광자원화 한다는 서울시의 의도에 대한 주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북촌 관련 시민단체인 공간문화센터 최정한 대표는 “북촌 마을은 엄연히 주민이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이라며 “주민의 생활 편의를 우선으로 하지 않은 채 관광을 위한 거리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오히려 계동길 확장, 쓰레기 처리장, 주차장 문제 등 주민 현안을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형 주차장 건설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이 엇갈리는 등 각각의 현안에 대해서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 때문에 한병용 서울시 한옥보전팀장은 “북촌가꾸기 사업이 모든 주민을 만족시킬 수가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현안 해결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의 공통적인 불만이다. 지난해 말 한국병원 터가 매물로 나왔던 일이 한 예. 북촌문화포럼 등에서는 서울시나 종로구에서 이 땅을 매입해 쓰레기 하치장이나 주차장으로 이용할 것을 제안했었다. 시에서도 이를 검토했으나 시간을 끄는 사이 땅은 민간에 팔렸다.

북촌 지역 주민 모임인 북촌가꾸기회 이형술 회장은 “지난해 시장이 바뀐 이후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에만 주력하느라 북촌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며 “예산 집행 계획이 2년 연장된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한편 북촌가꾸기 사업은 실행부서와 예산 보유 부서가 달라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촌가꾸기 사업을 진행하는 도시정비반 한옥보전팀은 주택국 산하. 그러나 이 사업의 올해 예산은 문화관광국에 있다. 서울시 예산관계자는 “사업 성격상 문화관광국이 예산을 쥐고 사업을 총괄하고, 이의 구체적인 실행을 주택국에서 하는 것”이라며 “예산을 집행하는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격이다.

북촌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원서동 계동 재동 등을 포함하는 약 19만5000평의 한옥 밀집 지역. 924채의 한옥이 모인 이 지역은 조선조 왕실 일가친척의 일을 맡아보던 종친부(宗親府)와 윤보선 전 대통령의 사저 등 사적지가 모인 서울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현대적 건물의 명소도 다수 있다. 그러나 85년 이후 현재까지 594채의 한옥이 사라지자 면서 한옥마을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1년부터 한옥 등록과 보수 지원, 한옥 매입, 생활환경개선 등을 골자로 한 북촌가꾸기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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