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3·15묘역 43년만에 聖地로

  • 입력 2003년 3월 14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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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기념일을 하루 앞둔 14일 경남 마산시 구암동 애기봉에 조성된 ‘국립 3·15 묘지’에서 한국부인회 마산시 회원들이 의거 당시 목숨을 잃은 김주열 열사의 가묘에 헌화하고 있다. -마산=최재호기자
3·15의거 기념일을 하루 앞둔 14일 경남 마산시 구암동 애기봉에 조성된 ‘국립 3·15 묘지’에서 한국부인회 마산시 회원들이 의거 당시 목숨을 잃은 김주열 열사의 가묘에 헌화하고 있다. -마산=최재호기자
15일은 경남 마산 시민과 학생 등이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정권의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다 많은 희생자를 낸 3·15의거 43주년이 된다.

그러나 의거 당시 산화한 희생자의 유족과 부상자, 기념사업회 관계자 등에게 이번 기념일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해 8월 경남 마산시 구암동 ‘애기봉’의 3·15묘역이 국립묘지로 승격된 데 이어 숙원이던 이 묘지의 성역화 사업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립3·15묘지 준공식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묘역 일대는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관리소측은 15일의 기념식 및 묘지 준공식 행사 준비로 분주했고 지역 주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한국부인회 마산시지회 회원 10여명은 단체로 참배했고 개인 방문객도 많았다.

이날 오후 4시에는 3·15의거기념사업회 강주성(姜周成) 회장과 황철곤(黃喆坤) 마산시장, 지역 국회의원, 희생자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유영봉안소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강 기념사업회 회장은 “수십년 동안 잃고 빼앗겼던 ‘3·15’를 이제야 되찾은 느낌”이라며 “여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숭고한 의거 정신을 전 국민의 가슴으로 확산시키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거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시민 백남광(白南洸·71·마산시 석전동)씨도 이날 묘지 일대를 돌아본 뒤 “시대 분위기와 정치적 여건 때문에 늦어지긴 했지만 국립묘지 승격과 묘역 완공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전체 면적이 4만3500평인 국립3·15묘지는 의거 당시 희생자 26명의 위패를 모신 유영봉안소가 애기봉 기슭 가장 위쪽에 자리잡았고 봉안소 아래 좌우측에는 희생자 묘역이 있다. 묘역 앞 마산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참배단과 상징부조벽, 민주의 탑 등이 서 있다.

의거 당시의 관련 기록과 자료, 영상물 등은 기념관 내에 모두 정리됐다. 이곳에는 의거당시 마산시민들의 궐기를 전국에 알린 동아일보 기사와 ‘마산 사건을 적색으로 몰려는 정책은 위험천만’이라는 1960년 4월 16일자 동아일보 사설도 전시돼 있다.

한편 국립3·15묘지 준공식과 제43주년 기념식은 15일 오전 10시 안주섭(安周燮) 국가보훈처장과 기념사업회 관계자,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3·15묘지에서 개최된다.

▽마산 3·15 의거▽

60년 3월 15일 자유당 정권이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노리자 이에 맞서 마산시민과 학생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가 12명이 목숨을 잃고 200여명이 부상한 사건. 이 사건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마산=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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