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사퇴 거부땐 人事 사실상 무의미

  • 입력 2003년 3월 7일 19시 51분


코멘트
승진에서 탈락한 검찰 고위 간부들이 버티고 나가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될까.

검찰 간부들 가운데 일부는 ‘옷을 벗지 않겠다’는 의사를 이미 표명한 상태다. 대검의 한 간부는 7일 “고검장에 승진하지 못하더라도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셈.

청와대는 “‘서열 파괴’라고 해서 선배 검사장들에게 옷을 벗으라는 얘기가 아니다”고 달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대다수 간부들은 청와대의 숨은 의도가 서열 파괴를 통해 ‘물갈이 인사’를 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청와대의 속뜻이 검찰 간부들을 물갈이하는 것이라면 이들의 자진 사퇴가 전제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검찰청법 37조는 ‘검사는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면 파면 등의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며 검사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또 41조는 ‘검찰 총장의 정년은 65세, 검사의 정년은 63세로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내보낼 방법이 없는 것.

더욱이 검찰의 모든 보직은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총장, 고등검사장, 검사장, 검사로 직급에 따라 규정돼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사표 제출을 거부한 한 고검장 때문에 검찰 직제 규정까지 고쳐 법무연수원에 고검장급 연구위원직을 만들었을 정도. 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선배 검사들의 용퇴 없이는 후배 검사들의 승진도 불가능하다.

42자리로 규정된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자리를 마구 늘릴 수도 없기 때문.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이 6일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에게 고검장들의 퇴임으로 빈 4자리 승진안을 통보하면서 사시 13∼16회의 나머지 검사장 23명에게 진퇴를 묻기로 한 것도 바로 이 때문. 결국 이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해 나가주지 않는 한 검찰의 인적 쇄신은 어려운 셈이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