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정위원장 묵인 의혹

  • 입력 2003년 2월 28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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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관이었던 이범재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중지 및 수배된 사실이 드러나 국가정보원의 조사를 받은 뒤에도 인수위에서 정상 근무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또 이씨의 수배 사실을 임채정(林采正) 당시 인수위원장 등 핵심 관계자들이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돼 국정원의 수사가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해 늦춰졌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배후 의혹=이씨는 28일 법원 영장실질심사과정에서 “2월12일 당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내정자에게서 내가 수배됐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어 13, 15일 이틀간 국정원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았으며 21일 인수위 활동이 마감될 때까지 사무실에 계속 출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문 내정자로부터 수배 사실을 전해들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 내정자는 이 사실을 임 위원장에게도 보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씨가 국정원 조사를 받으면서 인수위에 계속 근무했던 것은 임 위원장 등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당시 대통령당선자가 이 사실을 보고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문 내정자가 어떤 경로로 이씨의 수배 사실을 통보받아 신원조회 결과를 알려주게 됐는지의 경위도 안개에 싸여 있다. 인수위 활동이 마감될 때까지 이씨의 기소중지 사실이 인수위에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수위의 공식 신원조회가 실시되기 전부터 이씨의 범법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정보기관 또는 수사기관이 은밀하게 문 내정자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사 속도 조절 의혹=이씨는 13, 15일 이틀간 국정원 조사를 받았으며 27일 국정원에서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이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 28일 이씨를 구속했다.

이씨는 본보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정원 관계자가 ‘일주일이면 사건이 송치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씨를 조사한 뒤 12일이 지나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이씨가 마지막 조사를 받은 15일부터 사건이 송치된 27일 사이 인수위 활동이 마감(21일)됐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25일)이 있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배자가 인수위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인수위 운영과 대통령 취임식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수사 속도를 조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는 국정원 수사와 달리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면 법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의 절차를 거치는 동안 사건 내용이 공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건 송치가 늦어진 것에 대해 “(사건이) 정치적인 문제로 전환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이씨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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