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노력앞에 청각장애 '장애' 안돼요"

  • 입력 2003년 2월 17일 20시 59분


코멘트
14일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 포항공대 신문사. 학생 기자 8명이 모여졸업(19일)에 맞춰 발행할 신문의 마지막 편집회의를 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기자들은 동료 한 명을 위해 발음을 또박또박 하거나 했던 말을 다시 하곤했다. 편집을 맡은 정현석(鄭現釋·20·화학과 1년) 기자를 위해서다. 그는 두 살 때 병으로 청력을 잃었다. 대신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알아듣는 구화법(口話法)을 익혔다.

“어휴 불편하죠. 교수님의 강의를 빨리 못알아 듣고 친구들과 토론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보다 책과 논문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면 별 것 아닙니다.”

그는 중학교를 수석졸업하고 부산과학고에 다닐 때는 전국 규모의 화학 및 수학경시대회에서 16번이나 입상했다.

“일이 많은 학교신문사에 적응할 수 있을까 처음엔 고민스러웠어요. 5개월 수습 동안 시행착오도 많았고요. 취재쪽은 어렵지만 전산편집은 컴퓨터에 자신있어 수월한 편입니다. 편집을 통해 기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네요.”

그는 지난해 1년동안 화학과에서 42학점을 수강해 평균 3.9점(만점 4.3)을 받았다. 1∼2등을 하는 점수다. 학점이 깐깐한 포항공대에서 4점대를 받기란 대단히 어렵다는 게 학생들의 이야기. 기자들 가운데 학과성적이 가장 좋다.

동료 이남우(李南雨·20·기계공학과 1년) 기자는 “신문사 일을 하면서 최고 학점을 받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적극성으로 청각장애를 거뜬히 이겨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군은 1월부터 수습기자 아닌 정식기자로 일하게 됐다. 타블로이드판 16면 신문을 3주에 한번씩 7000부 발행하는 포항공대 신문은 이제 그의 편집을 거쳐야 나온다. “졸업특집 신문을 만들다보니 문득 3년 뒤 제가 졸업할 때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포항공대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를 더하고 싶어요. 그 전에 휴학을 하고 장애인 관련단체에서 일도 해보고 싶고요.”그를 신문사에 추천한 고교 동기 황정은(黃貞恩·20·생명공학과 1년) 기자는 “오랫동안 현석이를 가까이서 지켜 봤지만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잘할까 싶다”며 “회의 때 했던 말을 현석이 때문에 다시 하게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건 별 것 아니다”고 말했다.

포항=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