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국회의원, 정치인,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들의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기관이다. 한마디로 ‘권력층’을 집중 감시할 기관을 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문제가 불거진 것은 그동안 검찰이 ‘권력형 비리’를 조사하면서 수사의 방향이 정치권이나 권력 실세 쪽으로 향하기만 하면 번번이 수사가 미궁에 빠지거나 형평성 시비가 일었기 때문이다.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검찰이 수사한 이용호(李容湖)게이트와 옷 로비, 파업 유도 사건이 모두 관련자 처리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 특별검사에 넘겨졌다. 정현준(鄭炫埈)게이트나 진승현(陳承鉉)게이트는 검찰이 “정·관계 로비가 없었다”며 수사를 종결했다가 뒤늦게 고위 공직자들의 수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재수사하는 소동을 벌였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97년 초 검찰은 당시 김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의 비리를 덮어줬다가 나중에 여론이 악화되자 어쩔 수 없이 재수사에 착수, 현철씨를 구속했으며 12·12 및 5·18 사건은 관련자들을 불기소했다가 몇 달만에 태도를 180도 바꿔 기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권력층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특별조사기구를 만들어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부패방지조사국(CPIP)을 설치해 부패사범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등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홍콩에서는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74년 부정방지독립위원회를 따로 설치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현재 독자적으로 인사와 예산권을 갖는 수사기관을 설치하려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법조계 및 시민단체의 의견은 찬반 양론으로 팽팽히 맞서 있다.
법무부는 검찰권이 이원화(二元化)돼 통일적인 검찰권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굳이 설치하려면 대검찰청이나 법무부 산하에 두어 검찰권 행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 검찰은 가칭 ‘특별수사검찰청’ 설치를 위한 법안까지 마련해놓은 상태다. 대한변협 등 재야 법조계나 학계도 반대 의견이 우세한 편이다. 그러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전제일(全濟一) 간사는 “독립적인 사정기관 신설은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훼손된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으로 권력형 비리 척결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전 간사는 또 “조사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 기존 검찰을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며 “검찰권이 이원화된다는 검찰의 주장은 기득권 수호 논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인수위가 팽팽히 맞선 양론을 추슬러 설치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해도 이 기관이 탄생하기까지는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먼저 법률 개정을 담당하는 여야 모두 이 기관의 탄생을 달갑지 않게 보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인이 가장 먼저 이 기구에 의해 수사의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
또 대통령 직속의 독립기구로 할 것인지, 법무부나 검찰청 산하 기구로 할 것인지 등 논란이 많은데다 수사권만 부여할 것인지, 기소권도 함께 줄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검찰과 시민단체 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결국 이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의지와 노 당선자가 당사자인 검찰과 재야 법조계를 얼마나 설득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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