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이동통로 86%가 무용지물

  • 입력 2002년 12월 2일 08시 32분


야생동물의 서식지 단절을 막기 위해 지난 95년부터 전국 각지의 도로에 설치되고 있는 `야생동물 이동통로'(이하 생태통로) 37개 가운데 32개(86%)의 위치 선정이 잘못돼 동물 이동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강원도 양양군 한계령 인근에 건설 중인 생태통로는 인근 지역에 야생동물이 잘 다니는 길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이 문화재특별구역이라는 이유로 엉뚱한 곳에 건설되고 있어 예산낭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환경부는 2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기존 생태통로 37개에 대한 평가사업을 진행한 결과 "조사를 더 해 봐야겠지만 동물이 다닌 흔적이 있는 곳은 5군데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주변 환경을 철저히 조사하고 동물 습성을 파악해 생태통로를 구조적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백두대간을 단절하는 도로를 중심으로 기존 생태통로와 설치 적지를 파악, 지자체에 제공하기 위해 내년 5월까지를 목표로 지난 5월부터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생태통로의 잘못된 설치는 지방자치단체나 고속도로관리공단 등 도로관리 기관이 현장조사를 충분하게 하지 않았거나 비전문가들을 참여시킨 가운데 위치를 선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례로 경기 남양주 생태통로에는 아스팔트 포장이 돼 있는가 하면 충북 청주시의 경우 주민들이 동물 이동을 관찰할 수 있도록 우암산 생태통로 주변에 벤치를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의 생태통로 주변에는 "이곳은 생태통로입니다. ○○동물이 다니고 있습니다"라는 표지판까지 걸려 있어, 설치 목적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충북 충주시는 생태통로 공사가 진행 중이고 아직 야생동물이 다닌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이 다니고 있습니다"라는 표지판을 세워놨다.

한상훈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관리팀장은 "홍보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접근할 경우 야생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생태통로 이용을 꺼릴 수 있다"면서 "표지판은 가급적 설치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일부 생태통로는 위치선정이 잘 돼 동물들이 자주 이동하고 있지만 도로진입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입지환경이 좋은 것으로 평가된 전북 무주 생태통로는 동물들의 이동이 잦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벗어나 도로에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이 없어 고라니가 차에 치어 죽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에는 생태통로가 강원 6곳, 경기 9곳, 전북 6곳, 제주 3곳 등 모두 37개소에 설치돼 있고 강원 문경과 전북 군산은 설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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