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변화의 바람

  • 입력 2002년 8월 29일 17시 37분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두차례에 걸친 인사청문회와 국회 임명동의안 부결을 계기로 공직 사회에 건강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청문회는 고위 공직에 임명될 가능성이 큰 공직자와 대학 교수, 법조계 인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높은 사회적 신분에 따르는 정신적 도덕적 의무)에 대한 자각과 함께 자기반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관례나 친분관계에 의해 적당히 넘어가거나 처리하던 일에 대해서도 나름의 기준을 세우려는 모습도 보인다.

노동부의 한 고위 간부는 장대환(張大煥) 총리지명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28일 저녁 '살아가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는 내용의 편지를 딸에게 보냈다.

그는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정말 무엇인지 실감이 간다"며 "내 자신이 제대로 살아왔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한 국장급 간부도 "위장전입은 과거에는 누구나 하던 일상적인 일로 여겼는데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내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도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사람이 많더라"고 말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간부도 "꼭 총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공무원들은 앞으로 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간부는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행적을 재단하는 것을 가혹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바람직한 공직자상을 세우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며 "인사청문회 대상이 확대되면 파급 효과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박모 총경은 "경찰의 특성상 각종 민원과 선처 부탁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직원들에게는 원칙을 지키라고 하면서도 나 자신에게 들어온 부탁은 적당히 처리해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은 적이 없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출세를 염두에 둬서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 있든지 결국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밝혀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 조금씩 기준을 갖고 처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를 많이 배출하는 법조계와 교수 사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 K검사장은 "인사청문회가 고위 공직자일수록 일반인과는 다른 높은 도덕성과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강대 김모 교수는 "도덕성이나 사회적 의무는 뒤로한 채 교수직을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며 "이들에게 이번 청문회는 큰 교훈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진행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법무부의 한 간부는 "청문회는 바람직하지만 무조건 의혹을 제기하고 지명자에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는 일방적인 진행은 곤란하다"며 "몰아붙이기 식의 질의가 많은데다 의혹만 제기하고 질문을 끝내는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검찰 간부도 "도덕성의 기준과 청문회의 질을 높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누가 나와도 통과하기 어려운 기준을 설정한다면 청문회를 위한 청문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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