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키워볼까” 대금업하다 ‘큰코’

  • 입력 2002년 8월 1일 18시 27분


외환위기 이후 실직한 사람들이 퇴직금 등을 이용해 소규모 대금업(貸金業)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노리는 ‘아줌마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초보 대금업자들은 대부분 소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한 번 사기를 당하면 곧 파산으로 직결된다. 이들 초보 대금업자는 신체포기각서를 요구하며 빌려준 돈을 받아내는 악질 고리대금업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피해 실태〓10여년 동안 대기업에 근무하다 지난해 명예퇴직하고 3월 대금업을 시작한 한희근씨(38)는 요즘 죽을 맛이다.

4월 중순 40, 50대 여성 20여명이 찾아와 전세계약서를 보여주며 200만∼500만원씩 빌려갈 때만 해도 예상되는 이자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으나 그것은 잠시였다.

한씨는 첫 이자를 받은 뒤 아무 소식이 없어 계약서에 나와 있는 주소지로 찾아갔으나 뒤늦게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았다. 엉뚱한 사람이 살고 있었고 집 주변에는 비슷한 처지의 대금업자 5, 6명이 모여 있었다.

한씨는 명예퇴직금 3000만원과 아는 사람에게서 빌린 1억원을 고스란히 날려 빈털터리가 됐다.

전기기술자였던 김만희씨(40)도 감전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3000만원을 포함한 6000만원으로 4월 대금업을 시작했지만 한 달 만에 아줌마 12명에게 모두 4500여만원을 털렸다.

퇴직금 등 4000만원으로 4월 사무실을 내고 대금업을 시작한 전천훈씨(29)도 10여명의 아줌마들 때문에 3000여만원을 날리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한씨는 “피해를 본 초보 대금업자들이 내가 아는 사람만 20명이 넘는다”며 “빚 때문에 자살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무서운 아줌마들〓이들 사기꾼은 대부분 40∼60대 아줌마이다. 이들은 집주인 몰래 전세 계약서를 위조한 뒤 벼룩시장 등에 광고를 내기 시작한 초보 대금업자들을 노린다.

이들은 재산세를 낸 영수증을 제시하거나 딸을 내세우고 자신이 보증을 서는 등 갚을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대금업자가 직접 집에 가서 확인하겠다고 나서면 “그까짓 몇 백만원 빌리는 데 쩨쩨하다”며 핀잔을 줘 확인을 막는다고 피해자들은 말했다.

초보 대금업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줌마 수십명이 며칠 사이에 한 대금업자를 훑고 지나간다. 이런 전문 사기꾼 아줌마들이 최소 50명은 넘는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사후에도 대책이 없다〓한씨는 “사기꾼 아줌마들은 초보 대금업자들이 돈을 받아내는 데 소극적이라는 점을 악용한다”며 “고소를 했지만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사기꾼이 붙잡혀도 액수가 적어 구속되기 어렵고 처벌도 빌린 돈에 해당하는 액수를 벌금으로 내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이 같은 사기가 더욱 번지고 있다고 대금업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두 아이의 학비는 고사하고 석 달 동안 생활비도 갖다주지 못해 가정이 파탄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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