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지개발…북한산자락 숲 '신음'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24분


속살 드러낸 '서울의 허파'
속살 드러낸 '서울의 허파'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자락의 원형택지(실제로 임야지만 지목은 대지인 땅) 일부가 최근 개발되면서 ‘서울의 허파’인 북한산 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22일 평창동 537의14 일대 1418㎡(약 430평)는 소나무가 울창한 주변과는 달리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사가 급한 산자락을 깎아 평지를 만든 탓인지 잘려나간 산허리에는 굴착기 작업 흔적이 선명했다.

또 공사 현장 옆에는 잘려진 수십년생 소나무와 아카시아 등이 나뒹굴어 북한산 등반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등산객 이모씨(60)는 “흉물스럽게 파헤쳐진 산을 보니 내 마음도 찢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은 2000년 7월 15일에 제정된 현행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르면 경사가 급하고 나무가 빽빽해 개발을 위한 형질 변경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땅이다.

그러나 관할 종로구청은 “관련 조례가 제정되기 며칠 전에 부지 소유주가 형질변경 허가를 신청해 허가받았기 때문에 법적 하자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평창동 원형택지 내에는 조례 제정 직전 형질변경 허가를 받은 부지가 10여건이나 돼 앞으로 녹지 훼손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인근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아무리 적법하게 원형택지 형질변경 허가를 받았다 해도 후세를 위해 보전해야 할 북한산을 마구 망가뜨리는 것은 문제”라면서 “정부가 나서 관련 법령을 개정해 북한산국립공원과 인근 주택지의 ‘완충지대’인 원형택지를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문제의 현장에서 300m쯤 떨어진 471의 3 일대. 한 사찰이 인접한 대지 397㎡(120평)에 지난달부터 사설 납골당 신축 공사를 재개하면서 주민들과 대립하고 있다. 이미 건축허가를 받았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1년 이상 착공을 미뤄왔던 사찰 측이 최근 공사를 강행한 것.

주민들은 “만약 사찰에 납골당이 들어서면 인근의 북한산 일대의 30여개 군소 사찰이 모두 납골당을 지으려 할 것”이라며 “교통혼잡과 소음, 오폐수 등으로 북한산의 환경이 크게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찰 등 종교시설은 관할 시 군 구에 신고만 하면 납골당을 설치해 운영할 수 있다. 이 사찰 측은 최근 주민 대표들을 공사 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尹株玉) 사무국장은 “북한산 개발에 따른 영향평가와 형질변경 허가절차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971년 정부가 국고 확보를 위해 야산을 지목만 대지로 바꿔 분양한 26만5000평 중 아직 개발되지 않은 5만3000평. 서울시는 2000년 7월 도시계획조례를 제정해 경사가 21도 이상이거나 나무가 51% 이상 심어진 땅은 개발할 수 없도록 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