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리포트]박미향/여전히 ‘꽉막힌’ 학교생활 규범

  • 입력 2002년 2월 24일 23시 12분


올해 맏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게 돼 이것 저것 준비해 주느라 분주히 움직이다 문득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양갈래로 묶고 다니던 긴 머리를 귀밑 1㎝ 단발 머리로 자르고, 미리 맞춰 놓은 교복을 거울앞에서 몇번씩 입어 보며 마음 설레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그때는 용모 단정을 강조하고 머리 길이나 복장을 통제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의 규제가 많이 완화됐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며칠전 반 배치 고사를 보기 위해 배정 받은 중학교에 다녀온 딸아이가 가져온 ‘학생 생활 규범’이란 유인물을 보고 현실은 내 기대와는 참 거리가 멀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또 무척 당황스러웠다.

규범 내용은 양말은 흰색, 가방은 청색이나 회색 계통, 목까지 올라오는 티셔츠는 겨울철에 흰색만 허용한다 등등이었다.

당황한 이유는 얼마 전 딸아이와 함께 황토색 계통의 신발과 가방을 새로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새 신발과 가방이 단정해 보였고 디자인도 단순해서 당연히 중학교에서도 허용될 줄 알았다. 딸아이가 선생님께 다시 여쭤봤지만 대답은 여전히 ‘안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새로 산 가방과 구두는 학교의 규범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집에 그대로 묵혀두고 다시 또 구입해야 할 처지다.

더욱 답답한 것은 학교가 정한 색깔과 맞지 않으면 그 동안 신던 양말은 물론 멀쩡한 티셔츠도 착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천시내 다른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학부모는 “한때는 교복을 자율화해 아무 규제가 없었는데, 다시 교복을 입게 되면서 양말과 티셔츠 색깔까지 통제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학교 생활 규범을 확인하지 않고 미리 옷과 가방을 구입한 것은 분명 내 불찰이다. 아마도 많은 학부모들이 졸업과 입학시즌에 나와 같은 ‘불찰’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치스런 것도 아니고 디자인이 현란한 것도 아니라면 학생들이 사용해도 무방한 게 아닐까. 지나친 학교의 규제 때문에 새로 산 옷과 가방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이중낭비를 불러 이 또한 교육적으로 좋지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요즘같은 ‘개성의 시대’에 획일적인 색상만 사용하도록 통제하는 것은 어쨌든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한다. 학생의 신분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이런 규제는 완화할수록 좋고 또 같은 규제라도 신축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규제도 진정 학생을 위한 규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미향(37·가정주부·부천복사골문화센터 독서논술토론 강사·mhparkljs@hanmail.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