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남매 키우는 엄마의 속내 이야기

  • 입력 2002년 2월 5일 16시 39분


영재 남매 희구군(왼쪽)과 온유양
영재 남매 희구군(왼쪽)과 온유양
올 3월 영재교육진흥법이 발효된다. 국가 차원의 영재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초중고교에 영재학급이 생기고 시도 교육청과 대학 등의 부설기관으로 영재교육원 개설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그러나 이 틈을 타고 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사설 영재교육기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영재신드롬’을 부추기고 있다. 영재란 무엇인가. 영재로 키우는 것이 가능한가.

올 3월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 되는 강희구군(8)과 온유양(7)은 영재 남매다.

희구군은 지능지수(IQ)가 144, 온유양은 151. 희구군은 두돌 때 한글을 스스로 깨쳤고 300조각짜리 퍼즐을 완성했다. 오빠와 비슷한 시기에 글을 깨친 온유양은 책을 통째로 외우고 “일주일이 7일이니까 1월30일은 수요일이었어” 하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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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치고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책이 맛있다”며 책만 보는 영재 남매를 키우는 엄마는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들 남매의 엄마 윤선진씨(37·서울 강남구 대치2동)는 ‘별난’ 희구군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고 한때 제주도에 내려가 살 정도로 몸과 마음 고생이 심했다. 주위에선 이들 남매가 영재인 줄도 모른다. 주변에서 달리 대하면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내가 영재 남매를 키우는 엄마다”라고 ‘커밍 아웃’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희구군은 태어나자마자 비범함을 보였다. 하루 24시간을 거의 쉬지 않고 울어댔다. 의사는 “태내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 수면장애이므로 노래를 많이 불러주라”는 처방을 내렸다.

“결혼 초기인 데다 대학원 석사논문 쓰느라 정신없을 때 계획에 없던 희구를 가졌어요. 태교에는 신경을 전혀 못썼지요. 태교가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노래를 불러주지 않으면 희구군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윤씨는 화장실에 갈 때도, 요리를 할 때도 희구군을 옆구리에 끼고 노래를 불러줬다.

생후 7개월쯤 되자 희구군은 엄마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희구야, △△책 좀 가려올래?” 그저 지나가는 투로 말한 엄마에게 희구군은 책장에서 정확히 그 책을 집어 가져다주었다. 윤씨는 놀라 “○○책도 가져와” 했더니 마찬가지였다. 노래하다 지치면 읽어주었던 동화책의 제목을 알고 있었던 것.

돌이 지나자 말을 하기 시작했다. 18개월쯤에는 “엄마, 아빠가 피우는 담배연기가 뭉게뭉게 하늘로 올라가요”라고 말했다. 두돌 때는 “‘ㄱ’이랑 ‘ㅏ’가 있으면 ‘가’야” 하고 가르쳐줬더니 “그럼 ‘ㄴ’ 하고 ‘ㅏ’를 더하면 ‘나’가 되겠네” 했다.

하지만 대인 관계는 낙제점이었다. 사람을 무서워하고 낯선 곳에 가기를 싫어했다. 자전거, 미끄럼틀 타기 등 신체적인 놀이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윤씨 부부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1년6개월 터울로 온유양을 낳자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다니던 희구군의 아버지가 제주지사 근무를 자청했다.

희구군을 책에서 떼어내 깨끗한 공기와 푸른 숲에서 마음껏 뛰놀게 했다. 태교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인지 명랑한 온유양이 태어난 후로는 오빠도 따라서 밝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집밖에만 나가면 다시 걱정이었다.

“놀이방 선생님이 아이가 이상하다고 했어요. ‘왜 남자 화장실에 여자 변기가 있느냐’는 등 엉뚱한 질문만 해대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고민 끝에 서울에 가서 영재 판별검사를 받았지요. 영재 교육을 받으면 아이 성격도 좋아질 수 있다는 말에 희구가 우리 나이로 여섯살 때 다시 서울로 이사해 영재교육학술원(이하 학술원)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어요.”

놀이방과 유치원 수업은 시시하고 재미없어 하던 희구군이 학술원에서는 달라졌다. 처음엔 안 가겠다고 울고 불고 했지만 희구군은 단순히 지식을 전해주기보다 끝없이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작업에 신이 났다. 윤씨는 학술원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희구군과 놀게 했고 붙임성이 없던 희구군도 친구들에게 차츰 마음을 열어갔다.

“영재교육을 받기 전에는 희구가 자기가 또래친구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어린 마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가봐요. 학술원에서 어느 정도 지적인 호기심이 충족되고 자기와 같은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아니까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됐어요.”

희구군은 학술원 친구들과 만나면 학술원에서 배웠던 내용을 응용해서 놀고 학교 친구들과는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롤러블레이드를 타며 논다. 매주 3시간씩 학술원에서 영재 수업을 받고 주 1시간씩 어린이철학연구소를 다니며 올 겨울엔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를 곧잘 치는 희구군의 꿈은 ‘피아노를 잘 치는 과학자’.

온유양은 천성이 사교적인데다 오빠가 곁에 있고 오빠보다 석달 늦게 일찌감치 학술원에 다녀서인지 아직까지는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다.

하지만 윤씨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별난’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주기가 힘들어서다. 학교에는 영재 교육 프로그램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사교육 기관을 기웃거려야 하는데 믿을 만한 정보도 없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아이가 남들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면서 살아줬으면 해요. 인성이야 가정 교육으로 해결하면 되겠지만 타고난 영재성을 잃지 않게 키워주려면 꾸준히 교육 기회를 주어야 할 텐데 영재 교육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걱정입니다. 학교에만 맡겨 두어도 안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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