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개항 이후 '텃세 없는 기회의 땅'

  • 입력 2002년 2월 1일 02시 00분


개화의 선구자, 공업생산기지, 동북아 물류중심지 등의 찬사를 받으며 개항 이후 끊임없이 팽창해온 인천시. ‘바다와 육지로 똑같이 열린 땅’ 인천은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항만하역업체의 비리사건, 북구청 세도(稅盜)사건, 각종 환경공해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시민들이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북구청 세도사건 이후 9개월 동안 인천시정을 이끌었던 이영래(李永來) 전 인천시장은 인천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인천은 일부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개항 이후 ‘기회의 땅’이었다.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대거 몰려왔기 때문에 토착세력이 약하고, 그래서 속으로 곪던 비리가 감춰지지 않은채 수시로 불거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인천을 마치 모든 쇠붙이를 녹이는 용광로와 같은 도시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회원 8000여명으로 인천의 대표적인 문화학술단체인 새얼문화재단의 지용택(64) 이사장은 인천을 중국 고사성어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아무리 적은 양의 물이라도 사양하지 않는다)’에 비유한다.

그는 “인천 사람이 어디 따로 있는가. 태어난 고향은 제각각이더라도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고 애착심이 있다면 모두 이 곳 사람들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술집이나 저자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시민들의 인천 평가는 냉담한 편이다.

“교육수준이 낮아 아이들 키우기가 걱정된다.” “항구도시인데 바다를 보기 힘들다. 마땅히 가볼만한 곳이나 ‘인천’하면 떠오르는 곳이 없다.”

과연 인천은 어떤 곳일까.인천시민들에게 인천은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

▽정거장 도시인가〓인천 출신인 해반문화사랑회 이흥우(49·치과의사) 이사장은 인천이 정거장처럼 사람들이 거쳐가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외지인들이 쉽게 자리잡을 수 있는, 열려 있는 땅이 인천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생활기반을 잡으면 떠나려는 이들이 많아요. 좀 같이 살자고 붙잡고 싶은데 묘안이 떠오르지 않네요.”

그는 사재를 털어 박사급 이상의 분야별 전문가 19명과 함께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인천지역 지식인층 1100명을 대상으로 1년동안 설문조사 및 분석작업을 벌였다. 그 분석결과는 2000년초 ‘엘리트 정주의식 조사보고서-열려있는 땅, 인천’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이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 인천을 떠나려는 사람이 48.1%인 반면 그대로 살려는 사람은 37.5%로 나타났다. 이주하려는 이유로는 환경공해 26%, 여가문화부족 24%, 직장여건 8.8%, 교육여건 6.8% 순으로 꼽았다.

▽정체성 논란〓서해안고속도로 인천종착점(인천 중구 항동)에 있는 ‘인천항 개항 100주년 기념탑’의 이전 논란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탑은 인천시가 83년 인천항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높이 30m,가로와 세로 너비 2∼9m 규모로 설치한 것.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인천항은 이미 백제시대 이전부터 개항된 상태였으나 식민사관에 따른 잘못된 역사관으로 100주년 기념탑이 설치됐었다”며 교통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이 탑의 이전 또는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개항시점에 대한 논란 등은 역사바로알기를 통해 주인의식을 갖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논란은 50년대 말 중구 북성동 자유공원에 조성된 맥아더장군 동상의 철거 논쟁으로 이어졌다.

인하대 최원식교수(국문학과)는 “대외 개방적인 모습을 잘 나타냈던 ‘만국(萬國)공원’이 미국의 냉전논리에 편승해 자유공원으로 바뀌고 맥아더장군 동상이 들섰지만 다시 본래의 만국공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발전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인천재발견’ 심포지엄에서 인천지역을 통합하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주요 정책방향으로 △지역 사관 바로 세우기 △문화기반확대 △인재 양성 등을 제시했다.

박희제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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