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법 개정 상당한 진통 예상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36분


헌법재판소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정부는 조만간 전면적인 법률 개정 작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현행 재외동포법에 따라 재외동포들은 주민등록증과 유사한 ‘국내거소신고증’을 발급 받고 외국인과 다른 각종 사회 경제적 혜택을 받는다.

재외동포로 인정되면 2년 동안 국내 체류 및 체류연장이 가능하고 재입국 허가 없이 자유롭게 출입국할 수 있다.

또 취업, 부동산 및 금융 거래, 외국환 거래에서도 국내인과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90일 이상 체류할 경우 건강보험의 혜택도 받는다.

그러나 정부가 정부수립 이전에 이주한 중국과 옛 소련의 동포에 대해 미국 유럽 일본 등지의 동포와 동등한 수준의 이 같은 법적 지위를 보장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재외동포법 개정은 국가안보와 외교마찰, 국내외 여론 등 고려할 요소가 많아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험난한 법 개정 과정〓헌재가 재외동포법의 위헌여부를 심리할 당시 법무부는 위헌 결정이 나올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 등에 관한 의견을 헌재에 보냈다.

법무부가 문제점으로 열거한 것은 크게 세 가지.

먼저 위헌 결정으로 출입국 규제가 완화될 경우 노동 능력이 있는 중국 동포(조선적 동포)가 대거 국내로 유입돼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또 남북 대치 상황에서 ‘손쉬운 잠입통로’가 열려 심각한 안보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과 자국내 소수 민족에 대한 간섭을 꺼리는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외교통상부 역시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법 개정 전 해당 국가와의 의견 조율을 거쳐 개정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200만 동포의 치안과 출입국 문제를 관할하는 중국 정부 당국자가 한국의 법 개정 움직임에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헌재의 결정을 등에 업고 ‘해외 동포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며 국회와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법 개정 전망〓이런 정황으로 미뤄 정부가 중국과 옛 소련의 동포들에게 미국 일본 동포들의 수혜 수준까지는 개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법무부 관계자는 30일 “법 개정 작업에서 해외 동포의 형평성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겠지만 국내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미국 일본 동포의 혜택을 줄여 개방수준을 하향 평준화할 수도 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중국 러시아 등과 협의를 거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합리적 차별’ 수준에서 개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중국과 옛 소련 동포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지 않을 정도의 출입국 제한을 두고 이 지역 동포들의 불법 취업 등에 대한 단속 대책을 강구하는 것과 병행해 개정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中동포들 "우린 독립운동 후예들"▼

헌법재판소가 29일 내린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은 중국과 일본 등 재외동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중동포〓재외동포법 적용대상 제외자가 가장 많은 200만 조선족 동포들은 “뒤늦은 느낌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우천수(禹千秀·46)씨는 “재중동포 대부분이 일제시 독립운동을 하거나 강제징용 등을 피해 조국을 떠났던 사람들”이라며 “그럼에도 다른 나라 동포들과 같은 예우는커녕 심한 차별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한국에 딸을 유학보낸 조선족 손명철(孫明哲·47)씨는 “한국 여행이나 유학을 신청할 때 중국인은 비자를 쉽게 받는 데도 조선족 동포들은 오히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했다”며 “재외동포법 개정으로 한국 출입국 및 취업이 쉬워지면 한국에 가려는 동포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족 동포 사회의 급격한 와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정인갑(鄭仁甲) 칭화(淸華)대 중문과 교수는 “돈벌이나 공부 등 명목으로 한국으로 떠나거나 중국 내 한국 기업체에 취직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북지역의 조선족 학교들이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한국행이 쉬워지면 이런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주중 대사관의 일부 관계자들은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했다.

한 관계자는 “99년 재외동포법 시행 때 중국 동포가 제외된 것은 중국 정부가 ‘중국 국민인 조선족이 한국 국내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강력히 항의했기 때문”이라며 “재외동포법이 개정되더라도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외교 마찰만 불러일으킬 뿐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일동포〓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북한계 동포들의 법적 지위 개선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재일동포들은 ‘재외국민 호적취득 호적정정 및 호적정리에 관한 특례법’ 등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1948년 이전부터 일본에 거주한 사람도 재외국민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

문제는 54만여명의 재일동포 중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조선’ 국적으로 남아있거나 북한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인 13만명.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소속이 대부분인 이들은 한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다.

한 총련계 동포는 “북한계 재일동포 문제는 어차피 남북관계 개선에 달려있다”며 “그동안 이념 문제 때문에 마음대로 고향을 찾지 못했는데 앞으로 한국 가기가 좀더 쉬워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도쿄〓이영이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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