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實외교 망신外交]“영사는 잠시 때우는 자리”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13분


“이번 사건은 오랫동안 곪아온 상처가 결국 터진 것입니다.”

중국 정부가 보내온 공문까지 못받았다고 우기다 결국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한국인 사형사건 파문은 그동안 한국 외교의 뒷전에 밀려있던 영사업무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은 수십년전부터 예고된 것으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사업무는 세계로 뻗어있는 우리 외교의 말단 신경조직. 현지 교민과 자국민의 보호 및 감독이라는 중요업무를 담당한다. 그럼에도 영사직은 외교부 소속 초임외무관이나 타 부처 파견주재관이 떠맡는 기피직종. 게다가 중국이나 일본 등 일부 지역 영사관에선 폭주하는 사건 사고 처리와 비자발급 업무를 감당해내기 힘들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 영사들이 재외국민 보호라는 주된 업무보다는 한국에서 오는 정치인과 고위관리의 접대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이 정치인들의 뒤치다꺼리를 내심 즐기는 측면도 없지 않다. 자신들의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험’ 가입인 셈이다.

정치인들이 외교부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것도 해외에 나갔을 때 극진한 의전과 예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교민들에게는 영사들이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 불만을 사는 일도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영사들이 각종 루머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영사업무 전반에 대한 대수술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교부 관계자는 “‘잠시 때우는’ 식의 영사업무 풍토로는 제2, 제3의 사건이 터질 수밖에 없다”며 “인력 충원 및 인센티브 도입, 영사직의 전문화 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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