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수사관 24시]마약구매 미끼 던져 '적과의 거래'

  • 입력 2001년 8월 2일 19시 51분


서울지검 마약 수사관들이 '미끼'를 풀어  마약밀매업자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지검 마약 수사관들이 '미끼'를 풀어
마약밀매업자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마약 수사의 기본은 ‘적(마약사범)과의 거래’다. 마약구매자를 ‘미끼’로 거래를 튼 뒤 공급조직을 찾아내 일망타진에 나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마약밀매범들에게 속아 돈을 날리는 경우도 많다.

서울지검은 지난달 29일 신종 마약 ‘엑스터시’를 복용하고 테크노 환각파티를 벌이던 유학생과 주한미군 병사 등 26명을 검거해 기소했다. 검찰이 이처럼 ‘대어’를 낚는 데는 스페인에 유학 중이던 재미교포 김모씨(23·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씨는 유럽에서 엑스터시 200여정을 한 알에 2000원씩 구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서울에서의 가격은 유럽보다 30배 가량 비싼 한 알에 5만∼6만원. 검찰은 엑스터시를 밀매하던 그를 5월 말에 체포해 구속한 뒤 ‘거래’를 시작했다. 김씨는 불구속 대가로 엑스터시와 해시시 등 마약유통 정보를 검찰에 건네줬고 검찰은 김씨와 검찰 여직원을 마약구입자로 위장시켜 두 달 가까이 ‘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엑스터시 밀매자에게 속아 위장거래에 사용한 1000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서울지검 마약수사과 유문희(柳文熙·50) 수사관은 “미끼를 내세워 위장거래를 하지 않으면 마약공급책을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며 “마약공급자들이 거래자금으로 요구하는 돈이 갈수록 많아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약밀매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돈을 줬다가 검찰이 떼인 액수가 올해에만 6000만원이 넘는다.

마약밀매자들은 ‘안전한’ 거래를 하기 위해 수사요원들을 교묘하게 따돌린다.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돈과 물건(마약)을 주고받는 식은 옛날 얘기다. 돈을 온라인으로 미리 받은 뒤에도 시간과 장소를 바꾸면서 마약구매자의 정체를 철저하게 검증한다.

마약수사과 신동익(申東益·41) 계장은 “마약범은 대개 환각상태에서 거래를 하기 때문에 검거작전을 눈치채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수사요원들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약 수사를 하다 스스로 마약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 96년에는 30년간 마약수사에 전념해오던 전직 마약수사관 이모씨가 히로뽕 복용 혐의로 검거됐다. 이씨는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히로뽕을 집에 보관해오다 부인의 가출과 생활고 등을 잊기 위해 히로뽕을 복용했다.

마약밀매 수법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도 수사 여건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서울지검의 4개 마약수사반 요원 45명이 가진 장비래야 수갑과 진압봉, 승합차 3대가 전부다. 범인의 위치 파악을 위해 필요한 도청장치나 추적장치는 영화에서나 보는 것들이다.

수사요원들은 “몸으로 때우고 감(느낌)으로 수사하는 방식으로는 이제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며 “추적기 같은 기본장비도 없고 권총을 휴대할 수도 없어 범인을 눈앞에서 놓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수사관들은 “마약공급책 검거 여부는 돈을 얼마나 던지느냐에 좌우될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서울지검은 1억원을 요구하는 거물급 마약밀매자와의 위장거래를 놓고 회의를 거듭했으나 돈만 날릴지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포기했다.

위장거래를 위해 전국의 검찰 마약수사반에 배당된 예산은 연간 4억원에 불과하다. 대검 마약과 관계자는 “마약수사를 달리는 자동차에 비유하면 돈은 휘발유다”며 “마약수사에 대한 예산당국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권효기자>sap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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