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의보재정 파탄… 국정난맥' 공방

  • 입력 2001년 3월 21일 18시 35분


▼역공하는 민주당▼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와 정세균(丁世均)기조위원장 등이 21일 잇따라 건강보험 재정파탄과 관련해 총공세를 펴고 있는 야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당4역회의에서도 야당 비판이잇따랐다. 당정 자성론과 책임론 등이 주류를 이루었던 전날 분위기와는 달랐다.

김대표는 경기 광주시 승격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야당이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것은 적절한 자세라고 할 수 없다”며 “야당은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얽히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 기조위원장은 기자실에 찾아와 ‘과거사’를 거론하면서 “야당의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약분업에 대해서는 “YS 정권 당시 법제화했다가 준비가 덜 됐다며 현 정부로 넘긴 것”이라고 말했고, 의보통합과 관련해서는 “요즘 야당이 재분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신한국당 집권 시절인 97년 10월 정기국회에서 통합을 뒷받침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영환(金榮煥)대변인도 성명에서 “의약분업 등은 여야의 충분한 논의를 거친 것은 물론 영수회담까지 갖고 합의 실시한 것인데도, (야당이) 이제 와서 ‘남의 집 불 구경하듯’ 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대안 제시를 촉구했다.

다음은 당4역회의 발언록 요지.

▽박상규(朴尙奎)사무총장=한나라당이 내각 총사퇴에 이어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당적이탈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다. 야당은 정치불안을 가중시키는 정략적인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이규정(李圭正)고충처리위원장=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정권에서 입안하고 통과시킨 것이다.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떠넘기기, 뒤집어 씌우기로 일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추미애(秋美愛)지방자치위원장=의보재정 적자는 지난 14년동안 누적돼 온 것이다. 관료의 준비부족 뿐 아니라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도 한몫 했다. 일부 의사들이 처방전 발행 때 리베이트를 받고 있으며, 일부 약사들은 싼 약을 고가약으로 속여 돈을 챙기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이런 잘못된 관행과 집단이기주의를 바로잡아야 한다.

▽강운태(姜雲太)제2정조위원장=재정문제는 시스템이 얼마나 정상적으로 가동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지금은 의약분업의 단점만 나타난 상황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의료기관진료비 삭감률을 0.7%로 조정한다는데 선진국 수준은 안되더라도 1.6%는 돼야 한다.

▽이상수(李相洙)원내총무=국민 부담보다는 국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

<문철기자>fullmoon@donga.com

▼재반격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21일 국회에서 총재단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갖고 건강보험 재정파탄과 교육붕괴, 경제위기 등 총체적 국정 난맥상을 강력히 성토했다. 다음은 의총 발언 요지.

▽이회창(李會昌)총재〓이 정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절단날 것이 아닌가.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을 맞게 된 것은 이 정권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야당과 국민이 그토록 반대해도 오기 하나로 밀어붙이다 반년만에 국민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교육은 절망적인 상황이 돼버렸다. 내일은 현대문제, 연금부실화 문제 등 어떤 문제가 터질지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이 하는 것이라고는 DJP공조, 야당 탄압, 언론 탄압뿐이었다.

▽이한구(李漢久)제2정책조정위원장〓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세계에 유례 없는 관치경제를 구축했다. ‘생산적 복지’ 정책은 선심성 복지 정책으로 복지가 지속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정부의 거짓말과 국가기관의 변칙 운영으로 경제에 대한 불신감만 증폭시켰다. 전문가보다 그릇된 상식을 가진 권력자와 일부 시민운동가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상이 됐다. 또 지역과 이념, 실력자와의 인간관계 등 엉터리 인사기준에 따라 임명된 2, 3류 인사 중심으로 경제가 운영됐다. 의보통합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섞고, 의약분업은 덮고, 선심성 정책은 남발하면서도 각종 필요한 지불은 미뤘다.

▽정창화(鄭昌和)원내총무〓그저께 총리는 보건복지부에 책임이 있다고 했고, 보건복지부는 여당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여당은 정부에 속았다고 한다. 이 정권은 실패한 정책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그러고도 정책실패를 국민의 혈세와 희생으로만 충당하려 한다.

▽이재오(李在五)사무부총장〓현 정권이 3년 동안 잘못한 걸 2년 동안 만회해도 다 못할 것 같다. 또 내각 총사퇴를 촉구할 게 아니라 해임건의안을 내야 한다. 김대통령이 하야하는 게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심재철(沈在哲)의원〓‘국민의 정부’에 국민은 없고, 호주머니 우려 낼 실험의 대상만 있다.

▽박명환(朴明煥)의원〓김대통령이 허겁지겁 날짜를 받아 방미했는데 미국 언론이 ‘부시가 면전에서 뺨을 때린 격’이라고 평할 정도로 망신을 당했다.

▽김정숙(金貞淑)의원〓김대통령은 국민총생산(GNP) 대비 교육예산을 6%로 끌어올린다고 했는데 4.2∼4.5%밖에 안된다. ‘교육장관은 내 임기와 함께 가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평균 5개월여 만에 갈아치웠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선 긋는 자민련▼

자민련은 21일 의약분업 및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두고 일각에서 공동여당 책임론이 불거질 조짐을 보이자 “우리는 반대했던 사안”이라며 선을 긋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변웅전(邊雄田)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자민련은 지난해 10월부터 의약분업에 대해 1년간 실시유예와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 등을 여러 차례 충고한 바 있다”면서 “정부의 미숙하고 안이한 정책추진과 한심한 낙관론이 불러온 엄청난 결과에 대해 심각히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 대변인은 또한 “1차적 책임은 정부 당국에 있지만 야당과 이상론에 입각해 의약분업 전면 실시만을 강변한 시민단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추구에만 집착한 의약업계도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민련 당직자들은 이 같은 사태가 초래된 근본원인을 “시민단체적 시각에 경도된 정부와 민주당의 졸속 개혁 탓”이라고 단정했다.

이양희(李良熙) 원내총무는 “의약분업은 당초 소요될 비용 등 국민의 부담액에 대해 미리 대차대조표를 제시, 실시 여부를 국민이 선택하게 했어야 한다”면서 “개혁이라 해서 의욕만 앞세운 결과 혼란에 빠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 관계자들은 “공조 복원한 마당에 남의 얘기하듯 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의약분업이 단행되던 당시에는 공조상태가 아니었다”고 반박하고 “앞으로 개각을 계기로 명실상부하게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오히려 ‘자민련 입각 확대론’을 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국가보안법 개정말고는 당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거나 정부 여당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어준 게 있었느냐”는 등의 자성론도 없지 않다.

<박성원기자>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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