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좌담]'파괴냐 해방이냐'3화

  • 입력 2001년 1월 27일 14시 51분


▼가부장제를 박멸할 때까지▼

사회 : ‘이프’로 대변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목표로 삼는 가부장제의 타파는 어느 선까지인가요?

김신명숙 : 어디까지긴. 가부장제를 박멸할 때까지죠.

민용태 : 가부장제에 대한 전면전이라는 말은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이지 못해요. 그렇게 하면 여부장제가 가부장제를 죽이겠다는 소리처럼 들려 좋지 않아요.

김신명숙 :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그 목소리를 종합하다 보니 ‘가부장제와의 전면전’으로 된 거예요.

민용태 : 가부장적 질서라든가 권위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좋다 이거죠. 대신 여성운동이라는 이름 하에 성 정체성을 없애버린다거나 또는 여성의 성이 절대적인 성인 것처럼 군림하는 것은 가부장제의 나쁜 점 못지 않게 잘못됐다는 겁니다.

김신명숙 : 여성 자체에 성적 정체성이 있다면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문화적 산물이라면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없어질 겁니다. 문화가 바뀌니까요.

민용태 : 문화가 없어지는 법 있습니까?

김신명숙 : 여성들이 전투기 조종사 하겠다고 나서잖아요. 전투기 조종사들이 나올 겁니다. 기존 여성의 성적 정체성으로 보면 굉장히 벗어난 행위죠. 남자들이 미용사도 하고 심지어 파출부도 한다잖아요.

신승철 : 미국의 유명한 문명비평가가 21세기 인간관계의 핵심은 인티머시(친숙함)라고 말하더군요. 남녀 간 커뮤니케이션의 초점이 인티머시예요. 여성들이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군대 가는 것은 사회 참여 측면에서 위상이 변한 거지 여성으로서의 코어 섹슈얼 아이덴티티(핵심 성적 정체성)가 달라진 건 아니에요. 여성이 여성으로서 느끼는 감수성, 남자를 만났을 때 남자한테 바라는 것, 그런 것들은 본질적인 거예요. 자궁이 있고 애를 낳고….

김신명숙 : 생물학적인 근거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신승철 : 생물학적 바탕에서 사회적인 것이 나오죠. 예를 들어 남성들한테 여성 호르몬을 주사하면 성격이 변해버려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거죠. 동물 실험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어요. 젊은애들이 여자처럼 꾸미고 다니는 것은 하나의 유행이고 패션이라고 봐요. 그렇더라도 남성다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그게 잘못될 경우 미국이나 유럽처럼 동성애자가 증가할 수 있어요. 핵심적인 섹슈얼 아이덴티티에 혼란이 오는 거죠.

남윤인순 : 그건 페미니즘과는 상관없는 문제예요.

신승철 : 용어 사용에 혼란을 일으켜서 말한 겁니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걸 차별하자는 게 아니라 차이점이 갖는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안티미스코리아 운동만 할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여성상, 바람직한 남성상… 이런 운동도.

남윤인순 : 생물학적 차이는 인정합니다. 여성 운동도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아요. 여성이 가진 경험이나 모성은 남성과 차이가 있다구요. 그런데 흔히 얘기하는 남성다움 여성다움은 그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거기다 보태서 얘기하거든요.

민용태 : 원래 여자가 강간하는 것보다 남자가 강간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하는 짓이 좀 다르다는 걸 감안해야 해요. 성희롱을 범죄로 규정하면 남자가 걸려들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가부장제적 결과이건 뭐건 상위권에는 남자가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부장제를 말살하겠다는 식으로 나가면 남성을 이해시킬 수도 없고 남녀의 화평한 관계를 이루기도 힘들어요.

김신명숙 : 가부장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민용태 : 가부장제도엔 문화적인 미덕이 있습니다.

김신명숙 : 참 이게 달라요. 우리는 그게 나쁘다고요. 우리는 가부장제를 못 받아들이겠다고요.

신승철 : 가부장제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가부장제 속에 잘못된 요소가 있죠.

김신명숙 : 제도 자체가 나쁘죠.

신승철 :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새로 만들어나가야 하지, 가부장제가 나쁘다고 여부장제로 바꿔야 해? 어떻게 해야 해? 이건 굉장히 복잡한 문제예요.

김신명숙 : 동등하게 하자는 거죠. 간단한 문제예요.

신승철 : 남성다움의 문화적 행태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야지, 가부장제는 무조건 나쁘다,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김신명숙 : 그러면 가부장제를 뭐라고 그럽니까? 적당히 유지시킵시다, 그렇게 얘기해야 합니까?

민용태 : 구체적인 항목을 적어달라는 거죠. 아까 말한 대로 호주제를 폐지하자든가.

김신명숙 : 우린 구체적으로 하고 있어요.

민용태 : 전면전을 선언하지 말라고요.

김신명숙 : 전면전을 선언하는 게 아니고, 각 분야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니까 이건 전면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겠다 싶어 제목을 붙인 것뿐이에요.

민용태 : 남자 같으면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을 텐데.

김신명숙 : 아니에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가부장제가 어디 있어서 싸웁니까? 결국은 구체적인 현상과 싸우는 거라구요.

▼남성들도 동참해야▼

사회 : 남윤인순 사무총장께서 마지막으로 향후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이나 전망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분들도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남윤인순 : 우리가 밀고 나간다고 다 될 일은 아니니까 남녀 간 서로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성 심리도 이해하고 남성 문화도 이해하고. 그렇지만 이해만으로 끝나선 안되죠. 변화시켜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문제를 여성들만의 이기주의로 오해하는 흐름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여성해방이나 페미니즘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아직 우리 사회는 여성들에게 많은 것을 주지 않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여성이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비율만 보면 한국은 세계 74위거든요. 더욱 많은 여성들이 사회 발전에 참여해야 남성들이 가부장제라는 짐을 벗을 수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도 가부장제의 희생자이기 때문에 그 짐을 함께 벗는 과정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승철 : 기본적으로 그 관점에 동의하는데, 실천방법에 대한 생각은 달라요. 한꺼번에 하면 계층이나 연령대에 따라 저항감이 생깁니다. 나는 페미니즘의 기본 취지에 동의해요. 그런데 아까 말한 ‘가부장제와의 전면전’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저항감을 갖게 만들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연구를 더 많이 해야 할 겁니다.

김신명숙 : 저항감은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항상 변화하는 세력과 변화 당하는 세력 사이엔 저항감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신승철 : 일부 여성은 적대감을 갖고 페미니즘을 말한단 말이에요, 남성에 대해.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더라구.

민용태 : 페미니즘은 21세기를 이끌 새로운 담론으로 정착해 문화를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운동이나 법 싸움으로 끌고 가는 이데올로기적 행태를 버리지 않는다면, 옛날 공산주의운동이나 여성해방운동의 소름끼치는 양태를 연상시키는 아주 후진적 결과를 낳을 겁니다.

김신명숙 : 남성이 만든 기존 문화를 여성 관점에서 뒤집어 보고 새롭게 해석하고 있어요. 또 현장에서 운동하시는 분들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운동에 대해 너무 적개심을 갖지 마시고…. 왜 이런 게 생겨났겠어요? 필요하니까 생겨난 겁니다.

성희롱 문제를 비롯해 각종 여성문제가 발생할 때 앞장서 계도하고 힘을 모으는 단체가 분명히 필요하죠. 마치 시민운동단체가 필요한 것처럼. 또 ‘이프’처럼 공격적인 문화운동을 하는 것도 필요하고. 각 분야에서 각자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되겠지요.

사회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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