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철아, 아부지 왔대이 이제 편히 눈 감거라"

  • 입력 2001년 1월 12일 18시 39분


사랑하는 아들이 고문 끝에 숨진 그 장소를 14년 만에 처음 보게 된 아버지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논란 끝에 12일(기일은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보안분실(구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는 고 박종철(朴鍾哲)군의 14주기 위령제가 박군의 아버지 박정기(朴正基)씨와 스님 3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보안분실 509호 ‘고문의 현장’에 들어서자 박씨는 보존돼 있는 조사 테이블, 욕조, 변기 등을 조용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아들의 영정과 위패, 촛불, 향, 국화 등을 조심스럽게 놓으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두 손에 염주를 꼭 쥐고 한동안 방안을 울리던 스님들의 목탁소리만을 조용히 듣던 박씨는 위령제가 끝나면서 ‘고밀양춘삼박종철영가(故密陽春三朴鍾哲靈駕)’라고 적힌 위패가 불에 타 재로 흩어지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국화 한 송이를 영정에 놓은 뒤 박씨는 “이제야 너를 조금이나마 편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위령제를 마친 뒤 박씨는 “이 자리에 오니 ‘종철이가 살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며 “아버지로서 종철이가 죽음으로 지킨 양심과 지조를 본받는 것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보안분실 509호는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큰 교훈을 담은 소중한 자리인 만큼 인권교육의 산 현장으로 계속 보존했으면 좋겠다”며 “여건이 허락한다면 매년 기일마다 이 곳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박군의 어머니 정차순씨(69)는 “아들이 고통 속에 숨진 장소를 차마 보지 못하겠다”며 이날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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