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난민 서울연락소 오갈데없는 '난민신세'

  • 입력 2000년 12월 19일 18시 38분


‘난민(難民)이 되어버린 국제난민기구 서울연락소.’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일본 한국지역 사무소의 서울연락소가 그동안 입주해있던 유엔개발계획(UNDP) 한국지사(서울 용산구 한남동) 건물의 폐쇄로 오갈 곳이 없게 돼 한국이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됐다.

UNHCR는 51년 국제난민조약에 따라 국제 난민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기구. 우리나라는 92년 여기에 가입했다. UNHCR 서울연락소는 그동안 같은 유엔산하기구인 UNDP 한국지사 내에 사무실을 얻어 국내 난민지원 업무를 담당해왔다. 그러나 UNDP가 한국 정부의 지원금 감축으로 사무실을 축소이전하는 바람에 길거리로 나앉게 된 것.

UNHCR 서울연락소 연락관인 정현정(鄭玹汀·여)씨는 19일 “UNDP의 사무실 축소 계획을 알고 오래 전부터 외교통상부 등에 대책마련을 호소했으나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인권단체들은 “정부의 이중적인 인권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6월 UNHCR 집행이사회의 정식 이사국으로 선임됐다. 또 내년은 UNHCR 창설 50주년이어서 국제사회의 비난도 거세질 것이라고 인권단체들은 우려하고 있다.

정씨는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UNHCR 일본 한국지역 사무소’ 직원으로 서울에 파견돼 실질적으로 UNHCR의 서울지사 업무를 수행해왔다. 난민 신청자들은 정씨 사무실에 들러 난민상담과 안내를 받아왔으며 난민관련 소송을 내기도 했다. 정씨는 또 국내 구호기관과 연계해 난민신청자들에게 거처 등을 제공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무실 폐쇄로 UNHCR는 국내에서 난민업무는 물론 연락업무조차도 불가능하게 됐다. 전화 팩스 주소 등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연락소의 난민신청자는 올들어 50여명에 이르고 있으며 최근 중동과 아프리카 등의 국지전 등으로 크게 늘고 있다.

또 UNDP의 사무실 축소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대 법대 안경환(安京煥)교수는 “정부의 지원금 감축으로 UNDP가 상주직원을 10명에서 4명으로 감축하고 사무실도 대폭 줄였다”며 “정부가 경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국제 인권과 평화 등을 위해 애쓰는 유엔기구에 대한 관심을 대폭 줄여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정씨는 명확한 규정 없이 UNDP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UNDP 사무실과 인원이 감축되면서 새로 옮긴 건물에 함께 가지 못해 현재 사무실이 없어진 것”이라며 “그곳에서는 연락업무 외에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며 사무실도 편의제공 차원에서 지원됐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UNDP에 대해서는 한국이 수혜국에서 벗어남에 따라 한국지사의 역할에 대해 재정립할 계기가 생겼고 양측의 협의에 따라 사무실과 인원을 축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수형·신석호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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